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로라 Sep 08. 2023

퇴사 후 1년 3개월, 이제야 내가 보인다.

회사생활 연차 19년, 태어난 지 41년. 이제야 내가 보인다.

아직도 놓아지지 않는 그 단어 '퇴사'.


21살 때 어머니가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00아, 대학 휴학해야겠는데...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


IMF도 있었고, 아버지 공사해 준 곳에 공사대금도 몇 번 때였고, 돈에 관한 한 요령도 없던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진 지 오래. 어찌어찌 돌려 막기로 버티다가 결국 사달이 났다.

 

집안 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고자 당장 일할 자리부터 알아보고 싶었으나, 나 역시 요령 없고 세상물정 전혀 모른 채 부모품에서 맏이로 산지 20년 차라 갑자기 돈을 벌으라는 말에 막막했다.


일거수일투족을 엄마가 알려주는 데로 그대로 따랐던 나와 달리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은 그동안 해왔던 대로 영리하게 자신의 알바자리도 혼자 턱턱 잘 잡아왔는데, 나는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나 고민만 할 뿐.


그러다 한 다리 건너 지인의 아는 분이 회사에 알바를 구한다고 했다.

인사동에 엘리베이터가 유리로 되어있는 예술작품 전시센터에 위치한 곳. 작가 대타 전시입구 지킴이, 전시디피 보조, 각종 사무보조, 원장님 잡업무, 손님맞이, 부장님이 종이에 그려놓은 공문 문서 만들기, 은행업무등의 모든 잡업무를 도맡았다.


알바로 입사했지만 나의 말투, 성격, 며칠간 보아온 나의 행실등을 좋게 본 부장님에 의해 정직원으로 전환하면서 21살에 나의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사무보조로는 미래가 없어. 무언가 기술하나 있어야겠다.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것, 배우고 싶은 것...  그래, 포토샵학원을 다녀보자.'

조금이라도 전문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나는 문과생이었지만 평소 관심이 있었던 포토샵을 선택했다. 그리고 우연히 30만 원이 기본급인 전자책 제작 업체에 알바자리를 찾았다.


전자책을 만들면서 컴퓨터와 친해졌고, 컴퓨터를 활용한 일을 찾다 보니 그때당시 유행이던 온라인쇼핑몰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버티고 버티다 보니 내 나이 어느새 마흔. 회사 생활 연수로 19년 차.


돌아갈 수 있을 줄 알고 대학을 휴학하고, 잠시 집안 경제력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했던 직장생활을 유지한 지 20년째 돼 가던 어느 날.


더 이상은 못해먹겠어서 퇴사를 결심했다.

이직을 위한 퇴사가 아닌, 영원한 퇴사를 꿈꾸며.


회사생활 연차 19년, 태어난 지 41년.

퇴사 1년 3개월 차, 이제야 내가 보인다.




#퇴사 후 좌충우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전혀 몰랐던 나를 발견해가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