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이 회전요리로 둔갑하는 집
내가 이래서 아이스크림케익이 싫은거거등!
생일축하합니다아~~~
생일축하합니다아~~
사랑하는 OO의
생일축하합니다아~~~
초대받은 사람은 고모뿐이다.
그녀 몫의 앞접시라도 예의상 꺼내 보려다 관둔다.
따져볼 것도 없이 나랑 피 좀 섞였을 테니 남편을 제외하곤 혈연.
가족이고 식구다. 그렇다 함은?
침도 좀 섞여도 되는 사이라고 간단히 결론을 내리고 숟가락 5개를 빠르게 분배한다.
경험상 아이들은 이미 알 테고,
오로지 아직 우리 집 법도를 알리 없는 손님을 위한 배려차원에서 설명하는거다. 길다ㅡㅅㅡ
이거~~
어차피 냉동실 들어가면 아무도 안 먹어. 알지?
쪼금 남으면 버리면 되니까 그냥 원하는 거 한 입씩 맛이나 보자.
쪼금씩!
맛이나 보쟀다. 한 입씩은 비유맞고.
진정 쪼금씩 먹기 위함인가.
접시도 없고, 경계도 없으니
영락없는 양푼비빔밥 꼴이다.
돌려. 돌려.
이 순간 아이스크림케이크는 회전요리로 둔갑한다. 돌아가느라 저만 바쁘다.
돌아가는 속도와 손목스냅만 보면 신난듯한데
민망함에 구시렁 모드.
아후.. 진짜
매력 없는 맛만 골라 담았네.
어쩜! 민트초코칩이 없냐아~
매력 없는 맛이라더니 골고루 흠뻑 홀려 퍼먹는다.
난 이래서
아이스크림케익이 싫다니까?
..
..
어?
어? 여기
안 쪽에 요거트.
어쩐지~~
이름은 듀얼 왓츄원 넘버 9인데
6가지 맛만 넣음 사기지!
이 넘버가 그 넘버가 아닌가;;
암튼 먹어.
남편은 일찌감치 핑크스푼을 내려놓는다.
꽤 고지식한 사람인데.. 하늘색으로 줄 걸 그랬나?
혼자 먹고싶어서 일부러 더럽게 먹은거 아니고!
OO야, 슈팅스타 더 먹을 거야?
안 그럼 반대쪽으로 돌리자.
이야~~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성의 없네 진짜!
맛 선택이 영~~~~~~~~성의 없어!
(독백인가.... 지금 여기 나... 혼잔가...)
그러네...
이건 괜찮은데..
등등 간간이 대꾸를 얹던 가족들 숟가락이 속도를 늦춘다. 곧 움직임도 멈춘다.
아이고. 아까워.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다음부턴 그냥 쪼끄만 걸로 해.
내가 이래서 큐브타입을 좋아하는거야.
이건 커서 그음~방 질리거든.
그음~~방.질린데;;
야!
지금.. 너만 얘기해~
니가 젤 잘 먹는데 뭐~~
왜케 자꾸 돌려?ㅋㅋㅋ
손사래를 치느라 잠깐 쉰다.
연신 박혀있는 초코볼만 찾던 둘째도 가뭄에 콩 나듯 찾기 어려워진 때가 도래하자 심드렁하다.
생일선물로 아이스크림케이크를 꼭 먹어야겠다더니,
다음엔 초코볼을 선물로 주자. 나머지 식구들을 위해(?) 원하는 맛만 골라 담아 오는 걸로.
생각해 보니
9시. 생일상으로 아침식사.
11시 30분. 붐빌 것을 예상한 오픈런 입장으로
마르게리따. 살치살스테이크. 리코타샐러드(치즈빵추가) 새우살스파게티. 버섯 크림리조또를 흡입하고.
아무쪼록 [후식은 간단히]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며 케익을 사들고 온 현재시각 2시 07분.
분명 출출할 시간은 아니다.
나의 식탐의 근원이 나도 가끔 궁금하다.
쫓기듯 빠르게 탐하진 않으나
고요하거나 시끄럽다. 꼭 둘 중 하나다.
적절한 대화가 있는 식사는 상견례자리 같아 겁이 난달까.
경우 1 >> 애초 작심한 듯 말없이 최선을 다하는 경우는 주로 채소부터 고기류(고기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분명)까지 다양한 순으로 많이 먹을 수 있는 장소에서 그렇다.
가끔 보통사람 >> 급식, 중화요리(물론 나는 중국음식을 안 좋아한다. 분명), 도시락 등. 내 것과 남의 것의 경계가 분명해 공유의 위험이 없는 경우는 남들과 같은 분위기를 뽐낸다.
경우 2 >> 가만 보면 오늘과 같이 유달리 방언 터지듯 수다스러울 때가 있는데 언제인가~ 보니, 열 번 들어도 딸아이의 말이 맞아 민망하다.
첫째 아이의 관찰에 따르면 엄마가 유독 바쁘거나/ 말이 많아지는 식사자리는 다음과 같다.
1.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사메뉴 거나 맛 좋은 디저트류일 때
2. 평소에 건강에 좋지 않다며 자기들에게 제한을 두고 먹던 음식이 분배 없이 주어질 때
3. 누가 봐도 양이 충분한데 오직 엄마만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
연신
'나 이런 거 안 좋아하는 엄마'또는
'아까워서 어쩔 수 없이 먹는 엄마'로
열심히 둔갑한다.
결국 오늘도 나 혼자 지구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