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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Nov 08. 2024

지린내 나는 집

나만 놀란 모양이다.

새벽 5:20분. 사람을 마주치기엔 조금 이른 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동시에

눈앞에 눈이, 코 앞엔 코가.

꼭 내 키만 한 여자가..  나란하다.

무려 사람인 여자가 서 있다. 

놀랐다.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 더 놀랐다.


루도 거르지 않고 들르는 센터 건물의

7.8.9층은 오직 요양병원이 차지하고 있다.


보아하니, 병원에 머무는 간병인 이모님인 듯하다.

피곤에 잔뜩 절은 몰골로, 이 시간에 여기에. 내 맘대로 추측한 데에는 그녀에게서 진하게 뿜어 나오는 제법 익숙한 냄새 탓이다. 마스크를 가뿐히 뚫고 들어와 기어이 후각을 깨어나도록 한 그것.

지린내.


환자의 것이거나 그녀의 것인, 그런데 내게도

낯설지 않아 미간을 찌푸릴 이유가 없는.


어릴 적,

좁은 방과 조금 덜 좁은 방 사이엔 욕실이라기도

뭐 하고, 주방이라기도 한 데다가.

급기야 연탄을 갈 수 있는 난방 구멍까지 두루 갖춘 다섯 남짓한 멀티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선 365일, 음냄새도 아니고 비누 냄새도 아닌,

지린내가 났다.


이유인즉슨

은 밤이라 무서워서.

훤한 대낮이라도 귀찮으니까.

둘 중 하나의 마음으로 작은 것쯤이야 거리낌 없이

멀티공간 하숫구멍을 향해 간단히 해결하던 철없는 우리들 탓이었을 테다.


 일을 보려면 멀리까지 나가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숨을 참고 견뎌야 하는 화장실이 있던 집.

변비의 원인을 새삼 톺아보게 된다.


비단 그 집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를 코앞에 둔 편리성과 쾌적함을 두루 갖춘 집을 뒤로하고 꽤나 여러 차례 이삿짐을 쌌다 풀었다를 반복해야 했다.


또? 또? 를 외치며

피란길 짐가방을 둘러매는 이유란 언제나 집안 사정이었지만, 막상 집 안에 사는 어린이는 그게 어떤 사정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와 함께 머무는 사람.

나만 두고 떠나는 사람.

이랬다 저랬다 멋대로 구는 사람을 비롯해

많은 이들의 모습을 가만 목도하고 있자니

무력해지기 일쑤였다.


가라.

가지 마라.


마음속으로 나 역시도 이랬다 저랬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널을 뛰며 기진맥진했던 걸로 나는 기억한다.

마음이 고되어서

지린내 나는 집쯤이야 일상의 큰 타격이 되긴 힘들었다. 자칫 무개념해 보이는 시절을 거쳐 왔다고 해서 상식 없는 어른으로 자란 건 아니지만, 덕분인지 신체도 정신도 비위가 좋은 편이다.

웬만큼 지저분하고 더러운 환경에도 잘 견디고

어느 정도 더럽고 몰상식한 인간을 보고도 그럭저럭 사는 걸 보면, 그늘진 인생도 나름 의미 지을 수 있겠다.


주로 '불운한 애'로 나는 불렸다.

그럼에도 거듭된 이벤트들 덕분에 몇 곱절 더 나이가 먹은 지금, 보통의 어른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에겐 불쾌할 수 있는 냄새가

내게 불쾌하기만 하진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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