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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Mar 28. 2023

덕분에, 마음놓지 맙시다.

믿고 맡기는 일, 방치와 방목 사이

OO랑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을
확보해서 딱 한 달만 꾸준히  OO얘기
들어주시면 어떨까요? 30분이든
1시간이든... 특별히 뭔가 이벤트가
필요한건 아니에요. 새롭게 뭘 하지
않으셔도 좋으니 온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거죠. 손잡고 그냥
걸으셔도 되고요.  OO, 움직이는거
좋아하잖아요~^^


선생님, 우리 OO는 누나가 중학생이라
저랑 둘만 있는 시간이  꽤 많아요.
그런거라면 이미 충분한데요?


너무 다행이네요.어머니~
그 시간에 어머님께선 무얼하시고,
우리OO는 주로 뭘하나요?


수화기 너머, 한참동안 답변이 없었다.





12시간이 갓 지난 새벽.

돌아보니 상대를 알기 위한 사실기반 질문이었나? 그렇다면 문제될 건 없다. 

솔직히 아니었다.


'난 안 그런데, 당신은 ?'

질문 저변에 이와 같은 의심이나 멋대로의 예상이 깔린 것이었다면 무례했다.


우리 엄마요? 안 들어 주는데?
맨날 휴대폰만 하고 카톡 때메 바빠요.
나? 난 당연히 게임하죠.
게임 유튜브도 보고?



이미 아이와 나눈 대화로 일상을 엿본 후 던진 담임교사의 질문에는 그러지 말아야하지 않냐는

서늘한 당위만 담겨있다. 그결과가 고작 학부모의 죄책감만 건드리고 말았다면 무례'만'했다. 세련되지도 그렇다고 전문적이지도 않다.




아~~짜증나. 진짜!
젤 싫어. 이딴거!


잘 안돼서 그러니?


어려워.
안해.

씨!  발!



아홉살이니까 안 될 말은 아니다. 아홉살이라서라기보단 나머지 20여명의 아이들이 들을 이유. 굳이 있나? ㅠㅅㅜ


당황스러움과 화가 건드려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화를 화로 답하지 않는 직업적 특기 먼저 발휘하는 게 1차 과제.


2차>>  억지로 사과를 종용하진 말되, 나머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직 필요한 '조절'을 배우지못한  데에 측은지심과 지도의지만 잃지 말 것.




학부모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시각확인.

내게 허락된 시간 40분.

정확히 40분 후부터는 나도 그녀처럼 엄마다.

역할을 바꿔내야한다.

배추흰나비  번데기 껍질이 투명해지기 무섭게 날개돋이가 진행되듯, 퇴근시각을 기점으로 한 숨 돌리는 일이란 주로 엘리베이터에서 이루어진다.


오늘은 하필 그 여유도 강제생략.


교문앞으로 두 아이가 '대령'됐다.

한 녀석은 가래기침  소아과행.

둘째는 기필코 엄마의 나머지 손을 쥐고 떡집아줌마를 만나야겠다니 달리 방도가 없다.

이래서 내가 어여쁜 원피스차림에도 백팩을 포기할수 없다.


엄마1차 과제:  둘째 전략 모른척 성공시키기.


전략1.

언니에게 양보금지. 엄마랑 나만 손잡고 걷기(첫째는 중얼, 삐죽을 반복하면서도 그럭저럭 한 발짝 뒤에서 따르다가도 저도 모르게 백팩 끈이나  에코백이 쥐어진 나의 반댓손에 제 손을 슬쩍댄다. 남의 모이 훔쳐 먹는 것도 아니고, 여섯 살 동생 눈치도 슬쩍 봐가며.쯧)

전략 2.

떡집 아줌마한테 시크하게 인사 던지고(엄마따라 그냥 온거예요. 지나다들렀다. 오다주웠다 느낌?) 한참 관심받기. 문을 나서기 전 묻지도않았으나 슬쩍 잘난 체 남기기(플라렉스라는 안약은요? 그건 넣을때 아프죠. 그래도 안울어요.... 브로낙은 노랑 약이고! 이건 쉽지뭐. 잘 계세요~!<<일찌감치 인사말을 잘못배웠다. 맞는말 같기도해서 나도가끔 쓰는지경에 이르렀으나.)


1번과 2번이 충족되면 곁다리로 무지개 떡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그제야 수월한 투약을 허락한다. 

(쉬운 여자로 크진 않을듯)



 없는 저녁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잠들면 나도 지체없다. 눈 깜짝할 사이 다시 깨어난 시간을 보니.  12시간 전 난, 심히 다정한 담임교사였구나.

 모습으로 4-5시간 후 다시 변신하려면, 지금 책을 읽고, 지금 글을 쓰고, 밥을 하자.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마음 놓아요.
단호하게 가르쳐주시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니 안심이에요.
OO가 우리선생님은 무서운데
 무서울 때도  친절해~  하더라구요.
걱정없죠 뭐~


어머님, 마음이란 건요. 마냥 '놓기만' 하시면 아니되옵니다.  흑.

(욕대신 해소할수있는 무언가를 찾을수 있도록 같이..같이..  저 혼자는 역부족이에요;;)


이 지점에서 다시 나를 돌아본다. 묘하게 닮지 않았나?살짝 소오름!


첫째 아이를 마음놓고 보내고 있는 2023년.

지난 한 해 아이와 함께 숱한 상처를 견딘 우리가족. 뭐야. 상처라함은  3월을 기점으로 눈녹듯 사라지게 마련인가?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낯선모습에 이래서 교사가 답이구나 라며 안심으로 일관한 3월. 


부모역할도 하자. .


학습으로 닥달할 의지야 일찌감치 없다쳐도.

탄탄한 됨됨이와 제 역할에 대한 책임이 켜켜이 자라고있는 지금. 격려와 지지를 보내자. 자꾸 잊고 외면하지 말고 나야말로 30분이든 1시간이든, 그게 어렵다면 시간을 쪼개어 보자. 틈을 찾는 일 부터 해봐야겠다.


아이가 더 해야할 것을 찾지말고 지금 잘 해내고있는 고마운 일들을 찾아보면 어떨까?


영어도 i+1의 comprehensible input보다는 이왕이면 깔깔댈 쉬운 입력을 선호하듯.


더 해내기를 기대할 이유없이, 지금 여기

내 아이의 모습에 감사를 느껴본다. 부족하다면 가시화하자.



 첫째아이>>

1. 깨우지않아도 일찍 일어난다.

2. 8년을 잘 먹지 않아 하위 10프로 백분율을 고수하던 네가 이제 그럭저럭 잘 먹는다.

3. 9시 땡 하면 잠자리에 든다.

4. 영어책을 읽거나 듣는 게 공부인줄 전혀 모른다.

5. 가족들이 모두 출근, 등원하고 나서도 혼자 잘 있다가 8.20분 칼같이 등교한다.

6. 텅빈 집에 알아서 와서 손을 씻고, 꿈밭공책을 식탁 위에 올리고..(그다음은 뭘하는지 잘 모름^^)

7. 시간에 맞추어  바이올린, 피아노, 줄넘기, 수영. 그날그날 알아서 다니는듯하다.(전화가 안 오는  보면)

8. 담임선생님을 좋아하고 친구들 자랑을 많이 한다.

9. 너그럽다. 손가락이 밟혀 깁스를 할 정도가 되어도 친구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굳이 담임선생님께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이럴 땐 선생님도 알고계시는게 서로 난처하지 않다고 귀뜸해 주었다)

10. 부모에게 무례하지 않고,  여섯 번 이상은 동생의 건방과 똘끼를 위트있게 넘길 줄 안다.



뭐야. 나보다 낫잖아.

출어람? 후생가외?다 맞다.


(둘째, 널 감사하려니 지금 밥 안하면, 우리 배고파. 곧 넣어줄게)


 둘째아이>> 아픈손가락인줄 알고 죄책감 반, 내리사랑 반으로 키워냈던 JH


1. 웬걸? 열 살 언니도 울리고 기필코 이겨먹는 강단과 뻔뻔함을 두루 갖췄다. 보고만 있어도 웃기다.

2. 우리 부부에게 '새끼란 자고로 부모맘대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구나' 라는 깨달음을 절절하게 안겨준 스승이다.

3. 건강상의 결핍을 지니고 태어나 첫째 아이로 하여금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배려를 절로 배우도록 도왔다.

4. 저런 미친 존재감은 누구한테 물려받았나 싶을 정도로 -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애교가 말도 못한다.

5. 본인 통장의 현재 잔고를 매달 확인할 줄 아는 치밀한 경제관념을 장착했다.

6. 총알배송에 길들여져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캐치 티니핑 캐릭터 마스크 등) 다음날 새벽 

도착여부 확인 차,  현관문을 직접 열어재끼는 6세다. "모야? 왜 아직 안왔어?"

7. 50여만원을 감히 선결제한 몬*소* 교구 수업.  3회 참여 후 결단력있게 이건 내 길이 아니오! 선언함으로써 다시는 뻘짓을 하지 않도록 부모교육에 앞장서는 카리스마.

8. (수술과 검진이 일상이 되어 수시로 투약과 채혈을 하다보니) 진땀빼며 혈관을 찾느라 바늘을 이리저리 쑤셔대는 간호사를 '지지않을테다! 울지 않을테다!'라는 의지로 노려보는 깡을 지녔다.

9. 느닷없이 괴성과 오열을 터트리며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적응하도록 가족들을 단련시키는 센스를 지녔다.

10. 유일하게 아빠가 해주는 음식인 '짜파게티' '스팸따위'에 "아빤 선생님 아니고, 요리사네! 몰랐어~"하며 흐릿한 판단력으로 맹목적 사랑과 능청스런 자비를 베푼다.


넌 정말 특별한 아이라며 훈훈하게 마무리 하지만, 역시나 첫째에 대한 나열과는 사뭇 다르다. 세상에... 

딸 둘이 이렇게도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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