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알못 엄마들조차 모국어, 외국어 할 것 없이 독서의 중함에는 고개를 끄덕일 테다. 동의는 하면서도 종종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덧붙이는 건 무엇? 불안 탓이다.
태초부터 ‘초심 잃기’란 부모들의 본성이었나?
'그저 읽어만 다오!' 영어책을 손에 쥐고 있는 우리 아이의 아름다운 모습에 금세 미소가 번진 게 불과 몇 달 전일 테지. 허나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출산의 감동이 그러하듯.
우리 아이 수준에 제법 어려운 단어가 연속해서 눈에 띄는데 이 자식이 이걸 도대체 이해하고나 읽는 건지 의문이 들 거다. 그럴 수 있다. 사랑이라 포장하면 궁금증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속뜻은 의심이라 하겠다.
그걸 참아내는 게 내 강점이다.
예측 불가능한 순간 훅 들어오는 엄마, 아빠의 질문 공격.
“이건 무슨 뜻이야?” 부드럽게 시작해서 “그래서 공부가 되겠어?”로 마무리된다.
애는 그냥 영어책을 읽고 있었던 건데. 공부였나 보다 생각이 들면 뉘 집 애라도 속이 메스꺼운 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역시나 얼버무리거나, 정확히 어휘 뜻을 말할 수는 없으나 ‘전 괜찮아요’라는 표정으로 엄마를 '겨우' 본다. 한 술 더 떠 읽기를 관두기까지 하는 참사가 벌어지는 가정도 있을 터다.
사실 불편함 없이 즐겁게 읽고 있는 아이들은 감정적 여과가 낮은 덕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실상은 복 받은 부모인데 니가 감히 즐겁기만 해서 쓰겠냐고 따져 묻는 격이다. (...................제발 그르지 말기)
어휘도 풍부하고 독해력도 손색이 없는데 난 왜 원어민 앞에만 서면 작아지지?라는 한국인 꽤 많다. 이들의 아웃풋 실패 원인이 상당 부분 여기에 있다.
Affective Filter Hypothesis(정의적 여과 가설) 다름 아닌 모호함에 대한 인내랄까? 언어를 습득할 때 개개인에게 있는 정의적 여과 장치, 이 감정적 여과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십중팔구 그에 비례하게 불안이 수반된다. 반대로 자신감은 낮아져 원활한 언어 습득이 어려워진다.
이 여과 정도가 낮은 아이들은 초기 영어 듣기나 읽기, 즉 입력 상황에서 어휘나 문장의 모호함을 잘 견딘다. 몰라도 그만 또는 포기하고 싶어 하는 낙심과는 결이 다르다. 의미 관계를 모른 채 잊는다기보다는 나름 앞뒤 문맥 속에서 대강 유추하고 만다. 잠시 제낄 줄 아는 용기를 지닌 배짱 두둑한 아이들. 이런 아이일수록 비슷한 수준의 텍스트에서 앞서 만난 어휘와 반복적으로 재회하는 경험을 확보하자. 부지불식 간에 젖어 들 듯 내공이 쌓일 거다.
영어 리딩의 즐거움이 본품이면 단어 습득은 반가운 사은품인 셈 (가성비 갑 오브 갑이십니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다는 어느 작가의 결의(?)를 함께 느껴보는 공간, 예스24
대한민국에 ‘문해력’ 광풍이 일고 있다.
영어교육이든 문해력 함양이든 부모로서 아이 공부에 대해 담박한 마음만 갖고 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약장수가 많아지나 보다. 서점가나 유튜브 썸네일에서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핵심 주제어가 되다 보니 부모 입장에선 이거 없으면 망한 건가 싶을 거다. 나도 덜컥 겁이 나 우리말 독해 문제지를 들었다 내려놓은 적이 있다.
교육전문가들 너나 할 것 없이 문해력이 먼저 랜다. 심지어 30일이면 기적이 온다는데, 귀가 솔깃하다. 그렇다고 앞뒤 다 자르고 ‘영어책부터 읽히래!’라고 이 글을 해석한다면 틀렸다. 물론 내가 아직 그 ‘앞뒤’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으니 그럴 수 있다. (영업기밀을 아직 안 풀었으니)
앞서 말한 영어책 읽기와 어휘 습득의 의미 있는 연결도 ‘기꺼이 읽는 습관’이 먼저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아무 약이나 사지 말 것. 요령 삼아 단기에 연습할 수 있는 역량이 문해력이라면 못할 공부가 없다. 벼락치기가 불가능한 시험도 없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