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경멸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professional의 의미도, student의 그것도 전혀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데 말이다. 직업은 갖지 않고 학위만 계속 쌓아가는 대학생을 일컫는 말. 두 단어가 결합되니 내겐 좀 생경하다.
나의 경우 어땠는지를 떠올려 본다. 공부중독. 이 덕에 가르치는 직업인으로는 크게 실패했고, 가르치지 않는 부모로서는 적절히 성공했다. 취직이 안 되어서도, 사회생활을 회피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공부가 부족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니 배움에 더 갈증을 느꼈다.
한 번이면 족한 대학생활도 이번엔 또 어디로 가볼까 궁리를 거듭했다. 졸업(卒業)이라 함은 '마친다'는 뜻을 담고 있지 않나. 강릉 식구들은 내가 이제 좀 '마쳤나' 싶다 말고, 이게 '미쳤나' 싶었겠다. 여느 부모처럼 첫 월급을 기다렸거나.
두 번의 대학생활도 모자라 이미 발령받아 이제 좀 사회 일원으로 적응하며 살 것이지.
"세 번째 학교를 물색해볼까, 아니면 대학원에 가서 깊이 파 볼까?"
주로 이런 주제라면 부모님이든 할머니든 동네 개가 짖나 보다 하고 외면하곤 했다.
"시집을 갔으면 애 낳아서 조리원이나 갈 것이지 대학원은 무슨 돈지랄이냐."
그토록 공부만이 살 길이라던 울 할매 아니었던가.
돈지랄이라니. 그녀의 탁월한 단어 선택이 되려 나의 의지를 불태웠다. 하마터면 망설일 뻔했는데.
지체 없이/ 바로 검색 갑니다.
언제나 나에게 친절한 갈 길을 알려주는 네비스런 네이버
돈만 내면 학위 주는 식은 도저히 본전 생각나서 안 되겠다 싶고. 패스!
한두 푼도 아니고, 피 같은 급여 쏟아부어 가는 건데 "웬만하면"이 통하는 학교 또한 내키질 않았다. 계절제는 더더욱 거부감이 들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었다만. 방학 때 얼굴도장만 찍고 말면 그게 바로 돈지랄 아니겠나. 바로바로 적용해볼 수 없다는 점도 영 마음에 차지 않아서였다.
배달, 외식할 것 없이 상대의 "뭐 먹을까?"라는 질문에 나의 대답은 주로 "글쎄. 뭐 먹지?"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편이다. 결정장애를 30년 넘게 앓고 있는데 특정 영역에선 속도감이 말도 못 하다.
할머니와 특별할 것 없는 노가리를 깐 줄 알았던 그날이 지나고, 불과 보름도 안 되어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도 치렀다. 그렇게 나의 공부는 다시 시작되었다.
퇴근할 시간에 등교를 한다고 안부를 전하니 기가 찼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자애로운 이여사! 반응 참 박하다.
지랄이 반이다 니가 아주!
딱 한마디 던지고 말을 잇지 않으셨으나, 이상하게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듯한 민망한 포만감. 든든하다.
아무튼, 공부!
퇴근하며 '핫식스'(그야말로 핫 했던 고 카페인 음료, 난 이것만 들이키면 심장이 벌렁거려 운전이 괴로웠지만 최소한 졸음운전은 피할 수 있었다)를 쏟아붓고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랑 씨름하고도 여전히 우리 교실에는 그들이 그대로 머문다. 그게 나의 일상이고 그곳 아이들에게도 학교 말고는 갈 곳이 없었으니까. 사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이 짠해, 남겨서 거듭 가르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저녁으로 컵라면 한 잔! 하고 고등학생 시절 야간 자율 학습하던 친구처럼 각자의 공부를 해냈다.
어느 날은 아이들과 함께 바닥에 널브러져 '내가 내준 숙제'를 어느새 '나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미루고 미뤄둔 공문처리며 못 마친 수업 준비, 수당도 없는 원어민 교사 비서일까지 꾸역꾸역 해치우기 바빴다. '누가 교직을 꿀의 직장이라고 했던가' 원망이 밀려오다가도 순전히 내 선택 아니었나. 누굴 원망해.
정시퇴근은 꿈도 못 꾸던 시절, 교문을 나섰지만 집으로 향하는 이정표와는 반 댓길로 가야 한다.
지금 출발해야 퇴근길 마의 구간을 지나 풋풋한 20대들이 가고 없는 캠퍼스에 제 때 주차한다. 내가 가르치는 수업과 남이 가르치는 수업을 차례로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11시는 족히 넘긴다.
오며 가며 핫식스 효과가 열 일 한 덕에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던 때였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가떨어질 만도 한데 그래도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때였나 보다. 다음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괴발개발 갈겨쓴 대학원 수업내용을 말끔하게 다시 정리하며 배운 내용을 되새김질하는 게 그때는 즐거웠다. 출근과 동시에 전 날 짜 둔 수업 개요에 전공 세미나에서 번뜩였던 아이디어며 꿀팁들을 적절히도 끼워 넣었다.
안될 일이 뭐가 있나 기새 등등했던 시절.
내가 수업하면 이 녀석들을 아무리 뜯어말려도 아웃풋이 절로 되는 아이들로 자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나. 왜 그랬을까. 내 믿음에 근거가 있기는 했나 싶다.
이렇게 영어교육에 진심이었던 나를 보면서 우리 아버님, 손녀 자랑할 틈만 노리고 계셨을 테지. 시부모님의 금지옥엽, '우리 강아지~'는 나고 자랄 때부터 이중언어 환경에 놓일 거라 생각하신 건가.
"어쩌려고 그러냐"
"니 새끼 바보 천치 만들 셈이냐"
"대학원은 둘 다 전기세 내주러 다녔다냐"
돌아보면 나는 주로 어르신들께 비호감인 건가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까지 뜻밖에도 참 별 볼 일 없어 못마땅하셨나 보다. 우리 부부보다 더 초조해하셨고 영어든 아랍어든 눈이나 귀로 확인하기를 기대하셨다. 다행히 서서히 나는 호감형 며느리로 거듭났다. 호감형이라기보단 극단의 비호감은 아닌 게 분명했다. 이제는 아홉 살이 된 첫째 아이를 보며 하시는 덕담들을 통해 추측해보자면 그렇다.
역시 엄마, 아빠가 가방끈이 기니까 지새 끼 영어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 가르쳤네
너무 자주 입에 침이 마르셔서 식사나 제대로 하시는지 걱정이다.
사실 난 끝내주게는커녕 엉성하게도 가르쳐본 일이 없는데 과분하다. 누구나 희망은 갖고 살자. 오래 살고 볼 일이 내게도 올 수 있으니까. 사실 나도 이 아이가 그때 그 아이가 맞나 싶을 때가 많다. 달리 가르친 것이 없다면서 가르친 효과를 본 비결은 뭐였을까?
모국어 습득 상황을 빗대면 이해가 쉽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우리 부부는 한 번도 아이에게 의도적 영어교육을 하지 않았다. 시부모님 말고도 가르치기를 포기했냐며 비아냥 거리는 친지도 참 많았다. 그도, 나도 대학원에서까지 영어교육과 이중언어 사용 학습자에 대해 연구해 왔지만 내 아이라서 더 노출을 늦췄다. 암묵적 합의가 있었고, 외국어라서였다기 보다는 모든 언어 습득이 그러하듯 ‘때’를 기다렸던 것 같다. 지극히 의도적인 기다림.
두고 봅시다. 그냥 좀 두고 보면 어때.
- 혹시라도 아이가 학령전기 유아인데 여전히 이렇다 할 영어 노출이 없어서 초조해 뭐라도 해볼 심산이라면?
- 기관에서 특강 선생님이 오셔서 일주일에 한 번 활동이란 걸 한다는데... 딱히 잘 모르겠고 바쁘기도 해서 영어라면 영~ 접근을 꺼렸던 부모라면?
부탁하건대 아이가 모국어를 듣고 읽는 경험이 오랜 시간 쌓이도록 바탕은 꼭 깔아 두되, 속는 셈 치고 제발 두고 보자.
우리의 경우 즐겨 읽는 시간이 차고 넘쳤던 때가 7세 초반이었던가. 반복해 읽기를 유독 좋아했다.
'아직도 추피 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니' 어느 때는 영유아 때나 즐겨 듣던 추피 시리즈를 한참이고 탐독한다. 기대하던 풍경은 아니지만 내가 선택해줄 수 없는 영역이니 내버려 두자. 그 유치함이 오전의 풍경이었다면, 오후의 모습은 마치 몇 년을 거슬러 올라온 듯 낯설다. 앉은자리에서 400페이지가량의 어른 책(?)을 읽어낸다. 아이 책, 어른 책 구별이 있는 건 나에게나 그렇다. 아이는 책을 구분할 줄도 모르고 편식도 없다.
해를 달리 해도 여전히 읽고 또 읽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 소설은 글자만 빼곡하니 그림을 찾아볼 수 없다.
어른인 나도 쉬어갈 틈이 없는 책이다.
써야 해서 쓰고 시간을 쪼개어 읽는 나와는 달리, 마음이 이끌려 쓰고 하루의 대부분을 읽는 아이로 자랐다. 코로나 덕에 하루 30분 줌으로 유치원 선생님과 안부를 주고받는 것 이외엔 시간적 제약도 없었다. 오래도록 팬데믹 특혜를 누린 거다.
우리 부부의 확신에 방점을 찍어 준 밀착된 경험이었다. 책을 즐겨 읽는 시간들이 쌓이면 결코 배신이란 없다. 감사히도 언어라면 (목표어가 남의 나라 것일지언정) 모국어 기본기를 탄탄히 했을 때 비로소 응용은 뒤따른다.
이제 우리 '입력자료' 다양성이 가져오는 허무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를 거치자. 한숨 고르고 만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