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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Jul 11. 2023

오이지 맛의 비결

나도 그때를 살겠지


남편은 귀한 아들이다.

다른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넌 나 아니었으면
태어나지도 못했어!



셋째 시누이는  동생 꼴에 성정이 뒤틀릴 때마다

그의 출생의 덕을 제게 돌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들일 때까지 낳는 것만이 어머님의 책무였다고 당신 입으로 당당히 말씀하시는 집안이라 그렇다.


어머니께서 그런 귀한 아들을 위해 손수 만들어 보내시는 찬에는  그게 도토리묵이건 오이지건..  열무김치, 심지어 콩국물에까지 꼭 챙겨 넣는 공통 재료가 있다. 공통 물질? 아..  이걸 뭐라 칭해야 할지 난감하다.


바로 머리카락이다.


남편 말로는 발견이 안 될 때를 손꼽는 게 더 빠르다고 할 정도니 표현은 어색해도 공통재료라고 해도 되겠다. 이제 우리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우스개 소릴 던지기도 한다.


서 얼~마
이게..  맛의 비결인 건가?(애써 찡끗)


신혼 초에는 식사준비 후 수저를 들기 전 빠르게 스캔 후 슬쩍 빼놓고는 배가 아프다며 식사를 마다한 적도 있다.

혹시 탈모 때문이거나 음식을 하실 때 머리를 자꾸 만지는 습관이 있는지도 모른다며 애써 입을 앙다물곤 잊었다. 음식점이었으면 난 반드시 직원들이 알고는 넘어가도록 예를 갖춰 말해드렸을 사람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터울지게 딸을 셋 낳고도 한참 만에 남편을 낳고.

그 딸들 그 아들이 50이 넘고 40이 넘었으니,

어머니 연세에 갈수록 눈이 침침하실 만도 하다.

어머님은 물론 아버님도 하루가 다르게 세월을 굽어 사신다. 이제 보청기를 착용하시고도 곧잘 에? 하며 되묻기를 반복하신다.


남편은 어릴 적 졸업식에 온 어머니들 중 제 어미의 머리카락만 유독 새카매서 낯설었다 했다. 애지중지 아들 가진 덕에 어깨를 잔뜩 폈는지는 모르나 아버지들 중 제 아비  머리카락만 온통 희끗한 걸 보고 이상하게 어깨가 처졌다고 했다.




머리카락이 나오지않을 때에도 워낙 짜서 물에한참을 담궈둬야 아이들 식판에 올릴 수 있다.


나는 이제

어머님의 오이지에서 머리카락이 나와도 대충 물에 헹궈 아이들 식판에 올릴 줄도 알게 되었다.

유난을 떨며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던 내 모습도 꼿꼿함을 잃고 굽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씩 굽어가다 보면 나도 세상을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보며 감탄하는 삶을 살게 되지 않겠나.


조금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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