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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osi Jul 12. 2023

더워도 다시 한번

검스의 은혜

쌤~안 더워?


그러게요~  나이 들었나 봐요.
아직 서늘해~


개뻥이다.

내가 나를 꼬옥~ 안아주듯 굳이 팔을 엇갈려 감싸며 '아직' 서늘한 척한다.

이럴 때면 공연히 그녀들이 원망스럽다. 평소엔 관심도 없더니 남의 패션에 민망하게 웬 간섭이람!


-무더위가 벌써부터 기승을 부린다느니

-일교차가 사그라들어 반갑다느니


죄다 내겐 눈살이 찌푸려지는 뉴스다.


꿋꿋이 검정스타킹이 쓰임 받도록 돕는다.(누가 누굴 돕는 건지)

스스로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을 때까지 버티다가 네이비, 그레이컬러 정도로 대체하고 일주일 정도 더 게으름을 피워본다. 색상은 둘째고 내가 주로 양심상 달리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데니아" 


가릴 것이 그닥 없는 여성들에겐 관심사가 될  없을 것. 데니아.

스타킹의 두께라고 보면 쉽다.


출처:  비너*  사 제품설명 샷  ㅡ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단어라하면 "사계절"!



4월 말쯤 되면 살짜쿵 60 데니아 이하로 바꾸어 착용하고, 5월엔 나도 참질 못하고 30 데니아로 선택지를 좁힌다.(감사히도 단신에 다리도 유독 짧아 30데니아라봤자 남들이 신을 때보다 진~하니 콕콕 박힌 점들을 가뿐히 커버할 수 있다. 기미가 그득~해도 잡티를 가리는 쿠션팩트?를 두고 고민한 적은 없으나, 스타킹은 데니아별로 신나게 사쟁이는 여자가 바로 나)



이는 모두 털부자로 태어난 탓이다. 탈모는 어째서 두피에서만 열일 중인지  납득이 안 간다. (나도 가끔 무. 모. 한 여자로 살고 싶다.)


스타킹이 더이상 날 돕기에 곤란한 더위가 오면 그때부터 롱스커트들이 나의 게으름을 허락한다


더위가 조금이라도 감지되는 순간부터 근심이 많아지는  부유한 여성의 깊디깊은 고충을 누알까.


나는 그냥 털이 많은 여자는 아니다.

굉장히 많은 여자다.


심각한 수준의 비염환자인 내게 일교차로 재채기를 동반한 콧물세례와 함께 안구가려움증, 두통도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는.

소위 더위가 사그라드는 시기란. 덥지 않아 좋다? 노우~~우~! 


그보다 나의 검스(검정스타킹)들을 다시 꺼낼 수 있어 좋은 시기다. 이쯤이면 겨울을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말해 뭐 해. 한파도 반길 지경.




나에게 더위란.

여름이 다가온다는 것은.

한 해를 기준으로  리즈 시즌의 종료를 알린다.


털을 밀면 될  아니냐고 쉽게 되묻고 싶어지는 건 당신이 보통녀자이기에 그러하다. (면도기로 해결되는 그런 녀자) 혹은 실물을 접하지 못한 탓?



출처: https://www.pexels.com

족집게는 그나마 낫고 눈썹칼 또는 각종 제모 도구의 힘으론 어려운 게 속사정. 레이저제모?

안 해본 게 없습니다만.

이거 사실 좀 슬픈 이야긴데... 다들 읽으며 딱해하고 있으려나 몰라. 측은해해도 좋다.


기본적으로 양이 상당하고 모근의 재촉으로 빠르게 자라는 생명력에.

남자들이 면도를 해도 다음 날이면 검은 점이 돋듯 억센 털들이 금세 빼곡히 자리 잡는 현상을 내가 곳곳에 가졌다.




더위를

음식에,

휴가에,

물놀이나 여행에. 


엮어 글을 쓰고 싶었으나, 처음도 끝도 내게 이 날씨는 곤란하기 짝이 없다.


기. 승. 전. 털


부끄러워 그간 서랍 깊숙이 넣어두기만 했던...

검스로부터 은혜받은 지난 겨울의 글.

아쉬운 계절, 용기내어 꺼내본다.

지난겨울 감사의 마음을 담아쓴 이글은.. 읽은 이로하여금 나를 마주칠때마다 저도모르게 다리에 시선이 머물도록 할까 두려워 서랍에 쳐 넣었었다.


고해성사로 가뿐해졌으나

아직도 더울 날이 한창인 지금.

부지런히 예의를 갖추며 추위를 기다린다.


올해도 남들보다 훨~~ 씬 추위를 많이! 그리고 일찌감치 탈 마음의 준비가 바짝 되어 있다.




쌤,  왜? 벌써 다리가 추워?


그러게요. 이제 진짜 늙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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