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일 들 중 아홉. 과거 리모델링하기
어린 시절을 지나 청소년기를 넘기고 어른이 되면서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좋은 일도 올 거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나쁜 일 하나 있으면 좋은 일 하나 생겨 제로를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찾아오는 좋은 일들, 좋은 생각들이 그래도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로 인해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며 전혀 보지 못했던 성격의 사람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오고 나서는 아주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다. 태풍을 만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태풍을 바라보며 어찌할 줄 몰랐고 시간이 지나자 나는 그 사람의 태풍 속에 들어가 같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해졌다. 원인을 찾아야 고치고 나아갈 텐데 원인을 나한테서 찾으면 찾을수록 슬프고 비참해졌다. 상대가 알려주는 내 잘못은 넘쳐났다. 인정되는 것들도 있었지만 묘하게 이상한 것들도 있어 그것에 대해 반박하는 이야기라도 하려고 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원인이 되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목소리가 큰 상대의 말에 흔들렸고 그러면서 자꾸 나 스스로 검열하게 되었다. 실수했다가는 또 무슨 문제를 만들지 몰라 걱정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상대와 통화하기 전 상대의 반응에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대비를 하고 통화를 하게 돼도 수많은 비난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들에 심장이 뛰고 눈앞이 깜깜해질 때가 많았다. 어제 한 이야기와 오늘 하는 이야기가 달랐으며 늘 나는 생각이 짧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만 이야기가 끝이 났다. 다음에 다른 소리를 하는 상대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상대의 말들과 나의 말들을 적어가며 통화한 적도 있었다. 상대의 마음에 맞추려고 노력할수록 상대의 요구나 반응이 거세졌고 그럴 때면 손이 떨려 적을 수가 없었다. 모든 말들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내 안에 잘못된 부분들을 그 상대와 같이 꾸짖게 되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상대가 나를 이렇게 공격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의 잘못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서웠다. 또 무슨 잘못을 하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 전화기 신호음이 무서웠고 전화가 울리면 전화기를 바로보지 못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상대의 잘못을 바로 보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어진다. 나같이 잘못을 한 사람이 그럴 자격이 있나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험담을 꾸준히 하고, 모두들 상대는 바뀌지 않으니 나에게 노력하라고 강요했다. 나 하나 참으면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우 순진한 생각이었다.
조금 떨어져 바라보니 사실 답은 간단했다. 세상이 왜 이럴까? 나의 운명은, 나의 팔자는 왜 그럴까? 여기에 대한 답은 세상이 원래 불공평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이건 확실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똑같이 대한민국에 태어났지만 사람마다 경험하는 대한민국,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다 다르다. 누구든 삶에서 불행과 행복을 경험한다. 나는 불행한 지점이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지점이고 나에게 행복한 지점이 누군가에게는 불행한 지점이었다. 나는 나의 불행을 타인과 비교할수록 더 큰 불행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불행공식을 많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 다른 것이 내가 잘못 알고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쌓은 경험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나에게는 최악의 사람이 될 수 있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럴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 때 나는 자유로워졌다.
삶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냥 둬야 한다. 그건 뭘 해도 안 된다. 나는 그것을 거부하며 저항했었다. 내가 노력하면 상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할 수 없는 일에 엄청 많은 집중과 노력을 쏟아부었었다. 그 결과 내가 얻은 것은 나의 잘못과 부족함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나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 것이다.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는 것도 지금의 나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똑같은 과거의 현장에서 겪은 일들 전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 다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과거의 나는 무기력하고 두려움에 휩싸여 나를 지켜주지 못했던 비겁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나는 참 많이 미워하고 원망했다.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고 미워만 해서는 답이 없으니 결국 나는 나에게서 원인을 찾고 조금이라도 바꾸려는 노력을 통해 변화할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으며 살아왔다. 내가 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나는 나를 한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과거를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과거의 상황의 뼈대는 남기고 모두 부수면서 다시 나의 시선으로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내가 못한 것들, 내가 부족하다 여긴 것들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해낸 것들, 내가 용기를 내서 했던 행동들,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을 내가 아름답게 바라보기로 했다. 리모델링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는 예쁜 모습들에 집중해서 살아가기로 했다. 나에게 있는 소중한 순간들, 소중한 인연들에 집중할 것이다. 나의 과거도 나의 것이니 누군가의 시선에서 바라볼 필요가 전혀 없다.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되는 고유한 나의 영역이다. 그 과거의 주인공을 나로 바꾸어 나의 시선에서 바라보자. 재건축할 수 없는 그 시간들을 아름답게 리모델링하여 오늘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자. 우리는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