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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Oct 29. 2019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동화엔 한 줄도 등장하지 않을 만큼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었어요.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누군가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던 그때. 공주도 왕자도 아닌, 마법이나 신비한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 살았어요.

아침에 겨우 일어나 씻고 집을 나와 일을 시작해, 점심을 먹으며 잠깐 쉬었다가 다시 일을 하고, 저녁이 조금 지나서야 집에 돌아와 늦은 식사를 한 뒤 쉬다가 잠이 드는, 동화엔 한 줄도 등장하지 않을 만큼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었어요.

소소한 일에 웃고 즐거운 일도 간혹 있었지만 일하다 지치는 날이 더 많았고 감기보다 자주 우울함이 찾아왔으며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에 빠져 잠드는 날이 빈번했어요.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누군가가 너무 많은 행복을 가져간 걸까요. 아니면 그만큼 큰 불행을 한 번 겪지 않아서일까요. 많은 이들이 그렇듯 이 사람 역시 잔잔하고 길게 흐르는 불행 가운데 마디처럼 새겨진 행복을 매만지며 살았어요.

문득 기침이 늘었다고 생각해 의원을 찾은 어느 날, 사람은 자신이 위험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지금은 아무 약국에서나 약을 구할 수 있는 병이지만 그땐 아니었어요. 가장 용하다는 의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고, 고칠 수 있다 한들 공주도 왕자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하늘이 감동할 만큼 착하지도 않았고, 요정이나 산신령 또한 주변에 없는 이 사람에겐 그런 의사를 만날 가능성보단 병이 자연스레 낫길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이었어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지인들은 슬퍼하며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다고 했어요. 그땐 그저 웃으며 고맙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얼마의 시간이 흘러 병이 악화되면서 이 사람은 더 이상 일은커녕 침대에 마냥 누워 있어야 할 만큼 몸이 약해졌어요. 지인들은 돌아가며 찾아와 간호했어요. 한동안은요. 지극정성은 힘든 일이었어요. 각자 자신의 삶이 있으니 생업을 하며 간병까지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조금씩 지인들의 발길은 뜸해졌고, 병에 걸린 사람은 점점 오래 혼자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며칠을 혼자 보냈을까요. 한 지인이 오랜만에 찾아와 전에 그랬듯 문 옆 화분 아래 놓인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인사를 건냈어요. 하지만 침대에 누운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고, 지인은 잠이라도 든 건가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갔어요. 잠시 후 집 앞을 지나던 사람이 놀랄 만큼 큰 소리가 들렸고 이내 울음 소리가 이어졌어요.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을 살았던 사람은 그렇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세상을 떠났어요. 그러니까 아주 오래오래 전 이야기예요.


2018.03.0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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