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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Sep 28. 2015

이명이 들리나 했어.

가끔 그랬잖아.

이명이 들리나 했어. 가끔 그랬잖아. 갑자기 한쪽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까닭 없이 머리가 아파 오곤 했어. 정신을 차려 보니 TV에서 나는 소리더라. 방송이 다 끝나고 나오는 의미 없는 단음 있잖아. 애국가를 들었던가. 언제 끝났지. 익숙한 영화를 보고 있었어. 극장에서 같이 봤던 영화. 그땐 둘만의 설렘이 가득했는데 이젠 케이블도 아니고 공중파에서 하더라. 아마 몇만 명은 무덤덤하게 TV 앞에 앉아 봤겠지. 특별했던 모든 게 흔하고 평범해졌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잠시 딴생각을 했는데 그게 잠시가 아니었나 봐. 영화가 끝나는지도 몰랐으니까. 무슨 생각을 그리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니지만 말하진 않을래. 자리에서 일어나 TV를 껐어. 남아있던 TV 불빛도, 단순했던 소리도 사라지자 어둠과 고요가 날 삼켰어. 그건 그러니까, 내가 집의 배 속에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어. 혼자 있다는 사실이 너무 환하고 시끄럽게 와 닿았어.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제일 먼저 눈이 찾은 건 전화기였지만 머리는 그런 눈을 꾸짖고 대신 라디오를 켰어. 24시간이 모자란 사람들, 몸 한 편이 어디론가 자꾸만 흘러가서 그 빈 공간을 시간으로 메우려는-하지만 메워지는 건 없고, 흘러가는 것만 늘어서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 그들을 위한 목소리와 음악이 고요를 쫓아줬어. 안도감을 느낀 난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물을 받았어. 목소리와 물소리가 함께 울리는 방에서 서랍을 열어 속옷을 꺼냈어. 라디오 볼륨을 조금 더 키우고, 꺼낸 속옷을 욕실 앞에 가지런히 놓았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빨래 바구니에 넣은 뒤 욕실로 들어갔어. 오늘따라 따뜻한 물이 잘 안 나오더라. 반도 안 찬 욕조 물은 미지근하다고 하기도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몸을 녹이기엔 충분할 것 같았어. 물을 잠그고 거품 한 방울 안 낸 욕조에 앉아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빠르게 식어 차가워진 새벽이 내 몸 어딘가와 함께 흘러갔어.


2010.01.12.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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