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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Dec 25. 2015

노란 전구가 별 대신 빛난다.

북적이는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노란 전구가 별 대신 빛난다. 북적이는 사람들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날짜는 주문이 되었다. 사람들은 축복인지 저주인지 모를 것에 빠져 허우적댄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고요와 거룩함은 사라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흥겨움과 소란뿐이다. 화려한 빛에 쫓겨 어둠은 집을 잃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천국을 말한다. 목도리를 두고 온 게 실수였다. 옷깃 사이로 스미는 바람이 차다.

눈이 내린다. 눈을 보고 우주의 죽음을 확신했다는 누군가의 메시지가 휴대전화에 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주는  오래전에 죽었고 이 세상은 그 끄트머리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건 아닐까. 아슬아슬이 아닌 구질구질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오래전에 죽은 우주와 관계없이 이곳엔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찾아왔고, 사람들은 죽음을 잊은 채 행복에 젖어있다. 우주의 죽음은 여느 연예인의 스캔들만도 못한 것이 되었다. 잘해봐야 검색어 일위나 한 번 하고 금방 잊힐 것이다. 행복해야만 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누군가의 죽음은 듣기 싫은 불길한 이야기일 뿐이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행복과 먼 이야기는 무관심 속에 사라진다. 그렇게 흘려보내다 보면 모두가 행복해지겠지. 계속해서 떠들썩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우주는  오래전에 죽었고 이곳은 천국이 되었다.


사진 : Lano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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