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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Dec 04. 2015

소년은 피 묻은 손을 바라본다.

온통 붉은색이다.

소년은 피 묻은 손을 바라본다. 붉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의 피는-내 손에 묻었을 때는 더 붉게만 보인다. 온통  붉은색이다. 페인트 통에 담갔다 뺀 것처럼 두 손이 흠뻑 젖었다. 방금 전까지 따뜻했는데 금세 차가워졌다. 발가락 사이로 따뜻한 기운이 스민다. 검붉은 피가 바닥에 번진다. 너무 많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릴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남자는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미동조차 없다. 나무가 자라듯 피가 남자의 옷을 기어오른다. 갉아먹는다. 무언가 사라지고 있다. 죽음.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내가 죽였다. 내가 죽인 사람이 눈앞에 누워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아니 난 죽이지 않았다. 죽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죽였을 리 없다.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거짓말이다. 믿을 수 없다. 그래 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다. 살아있을 거다. 아직 죽지 않았다. 죽었을 리 없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을 리 없다. 괜찮을 거다. 빨리 병원에 가면. 병원에만 가면. 전화기를 찾기 위해 발을 내딛던 소년은 그 자리에 다시 멈춰 선다. 병원에 갔는데 살리지 못하면. 곧 죽을 거라면. 다시 살릴 수 없다면.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살인자. 죽는다. 사람을 죽였다. 사형. 모든 것이 끝난다. 죽음. 내가 죽는다. 왜? 사람을 죽여서. 내가 사람을 죽여? 죽이지 않았다. 그럼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은 뭐지. 난 죽이지 않았어. 곧 죽을 거야. 내가 죽였나. 내가 죽였어. 죽였으니 죽을 거야. 사람을 죽였으니 죽는 게 당연해. 내가 죽는 건가. 어째서 내가 죽지. 내가 왜 죽어야 돼? 사람은 누구나 죽어. 저 사람도 죽은 것뿐이잖아. 내가 죽였지.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누구도 다른 사람을 죽여선 안 돼. 알아. 아는데 죽였어? 난 죽이지 않았어. 죽었어. 나도 죽을 거야. 누가 날 죽인다는 거야. 무슨 권리로. 저 사람은. 난 무슨 권리로 저 사람을 죽였는데? 죽이지 않았어. 죽일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죽었어. 내가 죽였어. 난 아무 잘못도 없어. 사람을 죽였어. 그러니 죽어야 해. 죽고 싶지 않아. 죽이고 싶지 않았어. 이미 늦었어. 사람이 죽었어. 생각이 폭죽처럼 터져 쏟아졌다. 그토록 강렬하던 붉은색마저 소년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모든 불꽃이 사그라든 하늘은 어둠뿐이었다. 전원이 꺼진 듯 멈춰 선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베란다 너머 창밖으로 무겁게 눈이 내렸다.


사진_Eva the We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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