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롯이 Nov 20. 2015

사랑하는 사람이란 살아갈 이유가 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문득 찾아온 충동은 조금씩 짙어지며 여자의 곁을 맴돌았다.

사랑하는 사람이란 살아갈 이유가 되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엄마. 엄마가 있어서.
문득 찾아온 충동은 조금씩 짙어지며 여자의 곁을 맴돌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습관처럼, 계절에 한 번 걸리는 감기처럼 여자는 몇 해 전부터 죽음을 결심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죽음을 쉽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불행이 찾아오곤 한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밑바닥까진 아니지만 인간의 바닥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스스로가 유별나게 불행하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다만 그때의 기억이 여자의 깊은 곳에 남아 조금씩 어둠을 키웠을 뿐이다.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는 경계심은 그녀를 늘 긴장케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쉽게 사라지는 사람들을 보며 느낀 허무함,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스스로를 향한 실망감까지. 작은 빗금이 번지며 유리를 깨부수듯, 균열은 서서히 자라며 그녀를 갈라놓았다. 생각은 셀 수 없이 했고, 실행 직전까지도 몇 번이고 갔다. 마지막 한 발을 떼지 못하고, 손에 든 것을 끝낸 내려놓았던 건 매번 어김없이 떠오른 엄마의 얼굴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상관없었다. 가족이나 친구들, 동창이나 그 외 주변 사람들 모두, 슬퍼하는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몇 달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갈 것이 분명했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아는 누군가의 죽음에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는다면, 사람은 진작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여자 역시 스스로 그럴 것이란 걸 알기에 조금의 서운함이나 아쉬움도 없었다. 다만 엄마는 아니었다. 여자는 확신했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살고 있음을, 만약 여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녀 역시 함께 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혹은 어쩌면, 여자가 유일하게 걱정하는 사람이 엄마뿐이어서, 엄마만은 자신을 그만큼 사랑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그녀가 죽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가 엄마임은 분명했다.
여자는 늘 엄마에게 미안했다. 고마운 마음도 컸지만 못지않게 엄마를 원망한 적도 많았다. 죽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였기에, 죽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엄마를 향한 원망 역시 커졌다. 해선 안 되는 생각이란 걸 알지만 가끔은, 엄마가 없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무슨 사고라도 나서 엄마가 죽는다면, 아니 차라리 같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마지막에 고개를 젓곤 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울면서 밤을 새워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철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여자는 또 한 번 고개를 가로젓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을 꾼 거라고 말해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