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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Jun 19. 2017

남자는 짧은 이야기 끝에 묶여있다.

남자는 글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었다.

남자는 짧은 이야기 끝에 묶여있다. 처음 남자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이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지만 글 너머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었다. 물병이 있어야 형태를 갖출 수 있는 물처럼 남자는 글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었다.

처음엔 진심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의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 믿었다. 한 번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때 남자는-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하기도 전에-같은 일을 반복했다. 이미 한 번 겪은 일임에도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했다. 감정과 생각조차 뜻대로 할 수 없었다. 1인칭과 3인칭의 내가 공존하는 꿈처럼, 남자는 반걸음쯤 물러나 같은 일을 반복하는 자신을 보았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주고받고, 삶의 방점이 될 만큼 큰일을 겪다 어느 한순간에 이르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남자는 매번 같은 순간에 울고 웃었고, 슬퍼하고 기뻐했다. 반걸음 물러난 남자는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자신과 반복되는 상황이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 악몽에서 깨려 애쓰는 사람처럼 남자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잠에서 깨기는커녕 1인칭 남자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3인칭 관찰자란 그런 것이었다. 관객이 스크린을 향해 소리 지르고 몸부림을 친다 해서 영화 속 등장인물이 처음 봤을 때와 다른 행동을 하진 않는 법이었다.

남자의 주변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곁에서 가까이 지낸 이들은 물론 길에서 스쳐 보낸 사람들 역시 남자와 같은 상황이었다. 반복하는 나와 그걸 지켜보며 절망하는 나. 각자에 갇힌 사람들은 서로가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몇 번의 반복을 겪으며 이들은 점점 서로를 사람이 아닌 상황의 일부라 여겼다. 혹시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은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봐야 남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약간의 안도와 결국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는 끝없는 절망뿐이었다. 차라리 서로가 서로의 상황인 편이 나았다.

서른두 번째 반복이 끝나고, 남자는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3인칭의 나를 포기하자. 반복되는 흐름에 모든 걸 맡기자. 생각은 고통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 명씩 허물어지며 이야기의 일부가 되었다. 끝내 상황만이 남았다.

간혹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들은 바닥 없는 절벽으로 곤두박질쳤다. 다른 사람은커녕 자신도 알 수 없게, 조용하지만 깊게. 그리곤 잠이 들 듯 다시 1인칭의 자신에게 녹아들었다. 그렇게 이따금 찾아오는 절망마저 같은, 짧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2012.04.22.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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