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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Jul 29. 2017

그날 그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너와 난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까.

그날 그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너와 난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까. 모든 후회는 지난 일이기에 부질없어. 그때 넌 어렸고 난 더 어렸지.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그때 너와 난 참 어렸어. 하루하루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만큼. 지금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고작이지만. 가슴이 쉬질 않았고 머리는 늘 가슴을 뒤따랐지. 매일의 달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하루가 지나가곤 했어. 손에 쥔 것이 없어도 행복했고 간혹 내 손에 네 손이 쥐어지면 더없이 행복했어. 그리고 어느 날 가슴이 죽어버렸어. 만신창이가 된 가슴을 머리가 끌고 다녔어. 달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잊어버렸고 하늘 한 번 바라보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곤 했어. 손에 쥘 것을 찾아 헤맸고 간혹 싸늘해진 내 손에 놀라 서럽게 울곤 했어. 난 그렇게 가슴과 달이 뜬 하늘과 네 손을 잡았던 손 모두를 잃어버린 채 널 다시 만났어.

낯설었을까.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니. 듣고 싶은 말이 많은 만큼 네 말을 듣는 게 두려웠어. 더 잃을 거야, 아니 다 잃어버릴 거야, 여기서 너와 마주하고 있으면 다 잃고 말거야. 무엇을 잃는 게 두려웠을까. 난 그때까지 무얼 잃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왜 널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어째서 난 널 외면했을까. 무엇 때문에 넌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까. 사실 난 내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네 모습을 보는 게 더 무서웠는지 몰라. 내 삶의 하나뿐인 찬란한 기억, 널 잃을까봐.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를 잃게 될까봐 그게 두려웠던 거야. 네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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