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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Aug 29. 2017

요란한 조명이 꺼지면
도로는 주황빛으로 물든다.

여자는 모든 것이 삼 년 전에 멈춘 기분이다.

요란한 조명이 꺼지면 도로는 주황빛으로 물든다. 난로 꺼진 겨울 방처럼 차갑게 식은 공기가 빠르게 쌓인다. 아직 하루를 끝내지 못한 사람들이 발치에 쌓인 냉기에 몸서리치며 걸음을 재촉한다.
여자는 모든 것이 삼 년 전에 멈춘 기분이다. 오늘은 어제와 같고, 작년의 오늘과 2년 전 오늘이 다르지 않았다. 월급을 쪼개고 쪼개 빚을 갚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붙는 이자 때문에 원금은 조금도 깎지 못한 그대로였다.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비슷한 일을 하고, 신기할 정도로 같은 지적을 받다 지칠 때쯤 일이 끝났다. 여자가 감각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한 번 지적받은 부분은 잊지 않고 고쳤음에도, 상사는 꼭 서너 번 같은 일을 반복하게 했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매번 실망하고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3년이 그렇게 흘렀다. 지금처럼 새벽에 홀로 걸으며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된 걸까 고민하는 것마저 변함이 없었다.
여자는 문득 오래전 보았던 어느 영화 속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반복되는 하루에 갇혀있었다. 누군가 실수로 그의 인생에 '하루 반복' 버튼을 눌러놓은 듯 내일로 넘어가지 못 한 오늘이 반복되었다. 여자는 자신이 그의 처지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집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깨면 또다시 오늘, 지난 3년의 어느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회사를 그만 두면, 무언가를 끝내면 분명 다른 날이 오겠지만 빚은, 사라지지 않는 굴레는 지금보다 더욱 거대해져 여자를 짓누를 것이 분명했다. 영화 속 그는 반복되는 하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시도했지만 눈을 뜨면 어김없이 같은 아침이었다. 여자는 그와 달랐다. 현실의 죽음은 영화처럼 무력하지 않다. 단 한 번만 용기를 내면, 여자는 자신을 옭아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그녀에겐 죽음을 선택할 용기가 없었다. 초등학교에 채 입학하기도 전, 여자는 자신에게 농약을 먹이려던 엄마에게서 도망쳐 집을 나왔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이웃집 벽에 기대 서럽게 울던 여자는 해가 진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서 여자가 본 것은 죽음, 그 자체였다. 그때 본 엄마의 모습이 지금까지 겪어온 무엇보다 끔찍하고 무서웠기에, 여자는 한 번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여자는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살아있으면, 조금만 더 견디면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야. 3년보다 긴 시간 동안 같은 바람을 이어왔다. 다른 방법이 없어 참는 수밖에 없었다. 1년만 더, 아니 2년만 지나면. 지난 3년과 앞으로의 2년,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뭉쳐져 오늘이 된다면, 그렇게라도 내일을 맞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오랜 기대를, 여자는 다시금 되뇐다.
집에 돌아와 문을 열며 여자는 생각했다. 영화 속 그는 보다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반복되는 하루를 사용했고, 결국 가장 행복한 오늘을 보낸 날 내일을 맞이하였다. 과연 그가 맞이한 내일은, 오늘보다 나은 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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