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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May 19. 2017

여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길을 걷는다.

남자는 멍하니 서 있다.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여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길을 걷는다. 남자는 멍하니 서 있다.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고개도 들지 못해 땅만 보고 있다. 전화가 울린다. 남자는 듣지 못한 듯 미동도 않는다. 여자의 전화도 울린다. 여자는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받는다.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헛살진 않은 모양이구나. 영정사진과 시끌시끌한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누군가 생각했다. 먼저 온 건 남자였다. 여자는 해가 질 때쯤에야 도착했다. 이별의 연속. 무언가 흐릿해진 기분이다.
여자는 술에 취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술에 취하고도 남자는 말이 없다. 그리 과묵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오늘 두 번의 이별을 겪으며 남자는 조금 과묵해졌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비틀대며 장례식장을 나온다. 들고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기 두려워 남자는 고개를 숙인다. 경적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남자는 겨우 고개를 든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가 타라며 손짓을 한다. 남자는 깊이 한 숨을 내쉬더니 이내 차에 오른다.
태운 사람도 탄 사람도 말이 없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고 여자는 정면만 바라보며 차를 몰았다. 빨간불. 차가 멈춰 선다. 갑자기 남자가 울음을 터트린다. 깊고 서러운 소리를 내며 남자가 운다. 여자는 차마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지 못한다. 여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소리 내어 울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여자도 울음을 터트린다. 파란불. 신호가 바뀌었지만 차는 출발할 줄을 모른다. 뒤에 있는 차들이 경적을 울린다. 창문을 열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옆 차선으로 차를 돌려 지나가며 여자와 남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다. 도로 한가운데 멈춰 선 차 안에서 여자와 남자는 한참을 울었다.


사진 : jean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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