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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이 Apr 19. 2017

하루에 몇 번씩 잠이 들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에 몇 번씩 잠이 들었다. 밤에 자는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어딘가 앉기만 하면 잠이 들곤 했다. 지난 며칠을 떠올려보면 현실보다 꿈이 더 많이 생각났다. 꿈속에서 며칠을 보낸 듯 많은 일을 겪었는데, 깨어보면 고작 십 여분이 지나있곤 했다. 몇 편의 영화를 몰아보듯 꿈을 꿨고, 쉬이 잊히지 않는 꿈이 쌓여갔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꿈이 머릿속에 쌓여 어디든 뱉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며 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펜을 들고 노트에 꿈을 적었다. 전철을 타거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일과 일 사이에 시간이 남을 때면 어김없이 노트를 꺼내 지난밤 꾸었던 꿈의 내용을 적었다. 신기하게도 노트에 꿈을 적는 동안은 잠이 오지 않았다. 잊히지 않던 꿈도 노트에 적고 나면 머릿속에선 깨끗이 지워지곤 했다.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전철에 앉아 지난밤 꿈을 기록하고 있는 내게 옆에 앉은 사람이 물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적으세요. 난 멋쩍게 웃으며 별 거 아니라고, 그저 지난밤 꾸었던 꿈을 기억나는 대로 적고 있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이게 꿈인데 무슨 얘길 하는 거냐며 웃었다.

그게 마지막 장면이었다. 잠에서 깨어서도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언제 잠이 들었고 어디서부터 꿈이었는지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기억나는 장면부터 적기 위해 펜을 들고 노트를 펼쳤다.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보아도 노트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오늘이 며칠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 rachelakel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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