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지도 모르고 계단에 앉아 긴 대화를 나누었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눠마셨던 밤. 추운지도 모르고 계단에 앉아 긴 대화를 나누었어. 가파른 계단 난간엔 중국집 스티커가 붙어있고, 옆집 담벼락엔 아이들의 낙서가 남아있었어. 가로등은 무대 조명처럼 두 사람을 비췄고, 하늘의 별이 모두 내려앉기라도 한 듯 도시는 거대한 트리가 되어 반짝였어.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흥겨움과 소란에 취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을 거야. 같은 도시인데도 너와 내가 있던 곳은 조용하기만 했어.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만이 입김에 실려 공중을 수놓다 사라졌어. 유난히도 높은 곳에 있는 너희 동네. 넌 언제나 집에 가는 길엔 그곳에 들린다 했어. 아무리 힘들고 지친 하루도 그곳에서 바라보는 해 질 녘 풍경이나, 야경 한 번이면 모두 잊을 수 있다 말했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이구나. 백번도 넘게 본 것 같은데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어. 말을 끝낸 뒤 넌 부끄러운 듯 웃었지만 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어.
커피의 온기가 사라지고 어느덧 한 해의 끝이 일분 여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 너와 난 아무 말이 없었어. 끝나가는 한 해와 다가올 한 해를 위해 기도라도 하는 듯, 두 사람은 물끄러미 허공만 바라보았어. 시끄러운 음악도, 함께 소리치며 새해를 맞이할 사람들도 없지만,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넌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시계를 봤을 땐 이미 열 두시 하고도 이분이 지나있었어. 시각을 확인하고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마주 본 뒤 너와 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어. 허무하게 맞이한 새해가 어처구니없었던 거야. 숨이 멎을 듯 웃던 넌 내 이름을 한 번 부르더니 말했어.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래,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어쩌면 소소하고 별 것 없는 마지막이었지만, 내겐 더없이 특별하고 아름다운 시작이었어.
2012.01.01.31:29.
랄라스윗 파란달이 뜨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