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기 전까진 내 몸이 다른 사람보다 차다는 것도 몰랐다.
유난히 몸이 가볍게 느껴진 날이었다. 종일 잠에서 덜 깬 듯, 갑자기 중력이 약해지기라도 한 듯 나른다고 붕 뜬 느낌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내 몸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달리 아픈 곳은 없었다. 이마를 짚어도 뜨겁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기에 그냥 몸이 좀 안 좋은가 했다. 집에 가면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일찍 자야지, 그럼 괜찮아지겠지. 그렇기에 끝나고 잠깐 보자는 네 말에도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네가 소스라치게 놀라기 전까진.
이마를 짚은 넌 사색이 되선 괜찮냐고, 몸이 이렇게 뜨거운데 종일 몰랐냐고 했다. 그 정도야? 약국 들려야 할까? 묻는 내게 약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응급실에 가자고, 이러다 큰일 난다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때 네 손이 평소보다 따뜻하지 않아서, 아니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이마에 닿았을 때도 흠칫 놀랄 만큼 서늘했기에, 그제야 아 내가 지금 열이 많이 나는 구나 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진 내 몸이 다른 사람보다 차다는 것도 몰랐다. 겨울에 손발이 시리다는 생각이야 자주 했지만 계절과 상관없이 늘 몸이 찼다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네 손이, 품이 따뜻하다고 느꼈을 때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줄 알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제와 보면 순진하다 못해 멍청하지만 그땐 그랬다. 사람 체온이 다 거기서 거긴데, 더 차거나 따뜻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루 사이 계절이 달라지며 일교차가 유난히 컸던 가을의 첫 날, 왜 이렇게 춥게 입고 왔냐며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내게 메주고 옷깃을 여며주던 네가, 넌 몸이 차니까 더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된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창틈으로 불어온 바람에 책장이 넘어가듯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계절이 바뀌었을 뿐인데 얼굴을 스칠 때면 흠칫 놀라던 시린 손도 아무 느낌이 없다. 아무리 두 손을 매만지고, 얼굴을 감싸고 이마를 짚어 봐도, 내 몸이 어떤지 모르겠다. 난 여전히 다른 사람보다 차가울까, 혹 열이 있는 건 아닐까. 둔하고 둔한 난, 너를 잃고 다시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2018.03.13.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