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어느새 콧 속에 코딱지가 있다고 몰래 속삭여 줄 줄 아는 만큼 컸다. 어느 날은 부엌에서 혼잣말로 푸념 섞인 넋두리를 내뱉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나를 꼭 안아주고 갔다. 어떻게 이런 다정한 아이가 나에게 왔을까. 나는 그만큼 늙었지만 아직도 식당에서 반찬을 리필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쑥스러운 어른이다. 아이가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다.
돈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돈이 모이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모이는 듯 싶다가도 목돈이 확 드는 일들이 어김없이 생긴다. 일보다는 육아에 집중했던 시기를 보낸, 같은 치대를 나온 친한 친구가 말했다. “언니, 지금 같아선 정서적인 안정보단 인제는 그냥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서포트해주는 걸 아이들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 “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아이들에 관련된 많은 부분을 시터에게 맡기더니 용맹스럽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남편은 어릴 적 딸이 자기가 쓴 그림일기를 읽는 동영상을 나에게 보여줬다. 다섯 살 무렵의 아이는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스펠링으로 쓴 일기를 막힘없이 읽었다. “I like weekends because my mom’s home. she reads to me lots of books.”
얼마 전, 도서관에서 건네준 영수증엔 그 동안 우리가 빌려다 읽은 책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치가 되는지 금액이 찍혀 있었다. 그 금액이 내가 모아 놓은 돈과 딱히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돈을 더 벌어야 하겠지.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난 남들이 말하는 소위 전문직인데도 경력단절이 된 채 다시 일을 찾아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