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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 Nov 04. 2021

시험을 잘 보지 않았더라면


“오롯이가 공부 잘하는구나?”


국민학교 (아직 초등학교가 아니던 그 시절) 6학년 여름 햇살이 비추던 오후, 책상에 앉아 시험지를 채점하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불쑥 던지셨던 한 마디. 여느 때처럼 딱히 집중하지 않은 채 선생님이 시키신 것을 하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도 내가 공부를 잘하는지 몰랐으므로. 모든 아이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선생님이 내 얘기를 하신 게 맞는구나 확인했다. 시험을 잘 봐 놓고도 잘 봤는지 모를 정도로 그것은 우연한 결과였다. 평소엔 말도 잘 안 해 봤던 반에서 공부 제일 잘한다고 알려져 있던 남자아이가 쉬는 시간에 오더니 물었다.

“ 너 몇 개 틀렸는데?”


그렇게 알게 되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것들에 대해.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아이들이 더 많이 생겼고, 선생님은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전까진 난 그야말로 모든 것에 중간인 아이였다. 성격도 조용한 편이라 있어도 없어도 별로 태 안 나는 그런 아이. 심지어 엄마까지 놀라실 정도였다. 채점된 시험지를 받아왔던 날, ‘어이구, 우리 딸이 이렇게 공부 잘하는 줄 몰랐는데’라며 기특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어색한 웃음을 지으시며 내 등을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난 그때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한창 사춘기가 다가오던 나이어서였는지, 그렇게 쏟아지는 어른들의 관심과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눈빛이 싫지 않았고, 공부를 그저 그렇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의 존재감은 공부를 잘할 때 빛나는 느낌이었다.


그 나이 때 ‘공부’라는 것은 놀기 좋아하는 어린이들 사이, 조금만 꾹 참고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에 앉아있을수록 잘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는 그런 수준의 공부였다. 그래서 계속했다. 노력하는 만큼 높아지는 성적이 재밌고 보람 있던 시기도 있었다. 중학교 땐 수업 끝나는 종이 치면 다음 수업 종이 칠 때까지 쉬는 시간 동안은 학원 문제지 숙제를 했다. 공부를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탓도 있었다. 점점 반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뿐만 아니라 예체능 선생님들까지 나에 대해 알기 시작하셨다. 전교를 돌아다니시며 수업을 하시던 예체능 선생님께서 오셔서 ‘이 반에선 오롯이 공부를 제일 잘한다며? 오롯이 누구니?’ 혹은 ‘너는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니?’라고 묻곤 하셨다. 워낙 숫기가 없던 성격이라 그 이후 많은 대화를 이어간 적은 없었지만, 그땐 그 몇 마디 말만으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의 정체성을 공부 잘하는 아이로 계속해서 이어나가는데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그렇게 굳혀진 정체성은 나에게 학업에 매진하고 다른 것에 한눈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된 건 맞지만 한 편으론 족쇄가 되기도 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엉덩이 힘으로만 버티기엔 부족하다고 느끼는 참담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세상엔 지구력뿐만 아니라 명석한 두뇌, 배움에 대한 열정 또한 겸비한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허무하면서도 공부를 빼면 남는 게 하나도 없을 거 같은 마음에, 그걸 빼면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강박감에 공부를 놓을 수는 없었다.


그 덕분인지 지금 나는 누군가가 보기엔 그럴듯한 직장을 가진 사람이 되었지만,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그때 선생님께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버거운 생각이 들 때마다 조금만 더 찬찬히 내 마음의 소리를 살펴 주었다면 나의 삶은 달라졌을까? 30년 가까이의 오랜 시간이 지나버린 지금, 나는 연습 중이다. 내 마음속 한 마디에 귀 기울여 보는,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그저 내가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하나만으로 시작해 보고,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 마감 기간을 스스로 정해 보기도 하며, 예견된 보상도 없지만 온전히 나에게 최선을 다해보는 연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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