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말이에요”
어느 날 라디오를 듣는데 나온 말이었다. 모든 질문에 말문을 막아버리는 만병통치약 대답이라는 것이었다.
‘남자 친구와는 왜 헤어진 거니?’
‘그러게 말이에요’
‘결혼은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게 말이에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상상해 봤다. 말문이 턱 막히는 질문을 들었을 때,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불시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그러게 말이에요’로 대답해 보는 상상을 해봤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에요…
적당한 책임 인정과 적당한 책임 회피가 동시에 있는 말이었다. 어느 정도의 수긍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진정시키지만, 동시에 나도 모르는 바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줄행랑을 쳐버리는 느낌이랄까. 적당한 순발력과 너스레를 갖추어야 실제 그 말을 할 수 있겠지.
고로, 나는 절대 못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떨 땐 지나치리만큼 진심이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난 빈 말을 잘하지 못한다. 적당한 리액션으로 상황을 눙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의 일이라는 것이다. ‘언제 한 번 밥 먹어요’ 란 말도 난 쉽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이 인사치레로 하는 밥 먹자는 얘기에도 혼자 진심으로 그 가능성을 따져보느라 애매한 미소를 짓기 일쑤였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박이 다소 있다고 해야 할까…
미국에 살고 있는 나는 영어로 치면 ‘그러게 말이에요’와 비슷한 결의 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I know, right?’ 정도 될까? 그러고 보니 그 말도 내가 자주 안 쓰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 유연한 말의 힘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장전된 질문을 멈춘다거나 피식 웃으며 힘을 빼 버리게 만드는 그 말의 저력은 겸손하고자 애쓰는 마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너의 말에 난 동의할 수 없으니, 너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으니, 너의 간섭은 필요 없으니 싸우자 혹은 획 돌아서서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로선 그건 아닌 거 같지만 나 역시 그 어떤 일도 확신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니 당신의 마음을 내치지 않고 넣어두었다 혹여나 필요한 순간이 오면 꺼내 보아 그때 당신은 이런 마음이었군요, 역시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없군요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여지로 남겨놓겠습니다. 하는 그런 마음. 그래서 나는 앞으로 정색하는 대신에, 낯을 붉히는 대신에 그 말을 조금 더 해 볼까 한다. 절대로 못 할 말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