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가 웬일인지 오빠 테니스 레슨 데려다주는 길에 같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 평소엔 나랑 같이 나가서 단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는데 오늘은 아빠와 집에 있겠다고 했다. 아빠는 일 해야 하니 혼자 놀아야 할 거라고 했는데도 알겠다고 했다.
단이는 웬일인지 레슨 시간 동안 자기를 보고 있어도 된다고 했다. 보통 자기를 지켜보며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는데. 한 시간 정도 지켜보다 밖으로 나와 은이와 함께 였다면 오래 머물기 힘들었을 카페에 갔다.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은 것을 보고 문득 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핸드폰을 보지 않고 있으면 할 수 있는 혹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궁금해졌다. 한 시간 알람을 맞춘 뒤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1 스몰 라테
1 스콘
소설책 34 페이지
4 카톡 메시지
1 광고 이메일
이상이 한 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확인해본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그동안 내가 놓친 정보 (메시지와 이메일)의 양은 정말 미미했고, 책을 읽은 양 또한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난 정말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인 거 같다. 책을 읽으며 장면을 주로 상상하는 편인데, 황선우 작가님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은 영화보다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나만의 페이스대로 멈춰가며, 장면을 반복하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영화보단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한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하는 내용 같은 경우, 책은 나의 상상 속에서 장면의 강약을 조절하면서도 메세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영화는 그 장면을 적나라하게 내 눈 바로 앞에 펼쳐놓기에 그 잔상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 나를 오랜 시간 괴롭힌다. 아무튼, 중간중간 방해가 많아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나의 착각이었던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