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1

by 오롯

은이가 웬일인지 오빠 테니스 레슨 데려다주는 길에 같이 가지 않겠다고 했다. 평소엔 나랑 같이 나가서 단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는데 오늘은 아빠와 집에 있겠다고 했다. 아빠는 일 해야 하니 혼자 놀아야 할 거라고 했는데도 알겠다고 했다.


단이는 웬일인지 레슨 시간 동안 자기를 보고 있어도 된다고 했다. 보통 자기를 지켜보며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는데. 한 시간 정도 지켜보다 밖으로 나와 은이와 함께 였다면 오래 머물기 힘들었을 카페에 갔다.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은 것을 보고 문득 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핸드폰을 보지 않고 있으면 할 수 있는 혹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궁금해졌다. 한 시간 알람을 맞춘 뒤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1 스몰 라테

1 스콘

소설책 34 페이지

4 카톡 메시지

1 광고 이메일


이상이 한 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였다.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확인해본 적은 없었던 거 같은데, 그동안 내가 놓친 정보 (메시지와 이메일)의 양은 정말 미미했고, 책을 읽은 양 또한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다. 난 정말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인 거 같다. 책을 읽으며 장면을 주로 상상하는 편인데, 황선우 작가님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은 영화보다 책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나만의 페이스대로 멈춰가며, 장면을 반복하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영화보단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한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하는 내용 같은 경우, 책은 나의 상상 속에서 장면의 강약을 조절하면서도 메세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영화는 그 장면을 적나라하게 내 눈 바로 앞에 펼쳐놓기에 그 잔상이 너무나 강하게 남아 나를 오랜 시간 괴롭힌다. 아무튼, 중간중간 방해가 많아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나의 착각이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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