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3

by 오롯

바다에 다녀왔다. 이번엔 남편도 함께. 이글거리는 더위에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는지 보통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곳인데 두 시간을 꼬박 채우고 도착했다. 도착해서도 빼곡히 모래사장을 채운 사람들을 보고 남편은 ‘우와, 이렇게 사람 많은 거 처음 봐. 꼭 동해에 온 거 같아’라고 했다. 바다 내음보다는 선크림 향이 더 먼저 코를 찌를 정도였다. 그래도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그자마자 모든 더위가 사라졌다. 다들 이 맛에 왔겠지.


나는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는 것에 대해 주위의 다른 (한국) 엄마들에 비하면 꽤 겁이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해수욕장 스타일의 바닷가는 남편 없이 선뜻 나서지 못한다. 이유는 파라솔을 꼽아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바닷바람이 다소 센 해변에서 너무 얕게 꼽았는지 뽑혀 날아가는 파라솔을 잡으러 뛰어가는 사람들을 본 뒤론 나에게도 왠지 그런 일이 일어날 거 같은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아이 둘을 덩그러니 남겨둔 채 날아가는 파라솔을 잡으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뛰어가는 내 모습이 상상된 거다. 다소 어이없는 이유이지만 꽤나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두려움이었기에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다만큼은 남편과 항상 함께 왔다. 그런데 오늘 이후 나는 인제 혼자서도 올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파라솔을 잘 꼽는 방법을 터득했다기보단, 파라솔을 포기하면 될 거 같다. 보아하니 어차피 아이들도 파라솔 밑에 앉아 있는 시간은 별로 없고, 나 역시 파라솔 밑에 고즈넉이 앉아 있을 겨를이 없을 거 같다. 물론 남편은 파라솔보다 훨씬 소중하지만, 남편은 바쁠 때가 많으므로 시간을 맞추기 힘들까 봐 하는 말이다.


오늘 바닷가에서 정말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어느 흑인 젊음 여성이 등이 훅 파인 수영복을 입고 있었는데 척추선을 따라 길게 문신이 있었으니 바로 그 내용은 ‘결국 시련의 끝에 만개하리’였다. 해석한 내용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궁서체 한글로 적혀 있었다. 무슨 사연으로 저런 긴 문장의 한글 문신을 하게 된 걸까. 한문 문신을 새긴 사람들은 가끔 봤어도 한글 문신은 처음 보았을뿐더러 심지어 내용까지 약간 심오했다. 남편과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다-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는 게 아닐까, 부모님 중에 한 분이 한국 사람일지도 몰라, 한국말을 할 줄 아시나, 등등. 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노래 가사인가 보지? 정말 한류가 그렇게까지 열풍인 건가? 언니한테 아냐고 물어보니 처음 듣는다고 했다. 우린 너무 올드해서 모르는 건가. 막상 저 문장에 풍기는 느낌은 오히려 우리 세대 쪽인 거 같은데 말이야.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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