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4

by 오롯

빌려온 책들에 껴있던 도서관 receipt를 발견했는데 도서관 카드를 만든 후 지금까지 $18,879.75에 상당하는 책을 빌렸다고 나와있었다. 카드를 만든지는 10년 정도 되었고 큰 아이가 세 살 정도 됐을 때부터 책을 많이 빌려오기 시작했을까? 처음엔 내가 좋으면서 아이도 좋아할 거 같은 책을 한 두 권씩 사 모았었다. 그러다 어딘가에서 어떤 분이 자기는 전집같이 책을 사주기보다는 도서관을 애용하고,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책이 생기면 그때 그 책들을 사 준다고 써 놓은 글을 읽고 나도 그렇게 하기 시작한 거 같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저 정도의 돈을 아낀 셈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니,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대여하는 것이 출판업계에 혹은 작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뿌듯한 마음이 들긴 하다. 적어도 도서관에는 좋은 건가 보다. 체크할 생각조차 못해봤던 수치를 저렇게 빌릴 때마다 기분 좋아하세요! 하는 뉘앙스로 찍어주는 걸 보면. 도서관에 좋은 건 작가에겐 별로 안 좋은 걸까. 양쪽에 상호적으로 좋은 거면 좋겠는데 왠지 단순한 직감으론 아닐 거 같아 맘 놓고 뿌듯해해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난 양쪽을 다 아끼니까.


어쨌든 도서관 덕에 아이들에게 부담 없이 이것저것 다른 느낌의 책들을 시도하게 할 수 있고, 나 또한 틈틈이 빌려오고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읽고 있는 아이들 틈에 앉아 나도 책을 읽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더 크면 사라질 장면 같아서 함께 하면서도 그립다.


나 같은 경우엔 읽었는데 너무 좋았어서 그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과 작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책을 구매한다. 아이들도 똑같은 책을 자꾸 빌려오려고 하는 경우 그 책을 사고 싶은지 물어본다. 보통 내가 아이들을 위해 소장하고 싶은 책과 아이들이 소장하고 싶은 책은 달라도 너무 달라 지갑이 선뜻 열리진 않지만, 책에서만큼은 가장 관대한 엄마가 되고 싶다.


어렸을 적 백화점에 갈 때면 아빠는 쇼핑의 마무리에 우리 삼 남매를 서점이 있는 층으로 데려가셔서 좋아하는 책을 한 권씩 골라오게 하셨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나서는 것 같았던 설렘과 흥분되던 마음을 아직도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우리에게 가서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전적으로 허락하셨던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거 같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빠도 포함하여 각자가 고른 책들을 가지고 만나 쪼르르 계산대 앞에 서서 고른 책들을 내려놓으면 아빠가 책값을 계산해주셨다. 아빠에게 단 한 번도 이 책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없다. 물론 기억은 시간이 지나 변형되기도 하고 잊혀져서 다른 모양으로 재구성되기도 하지만,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많고 많은 책들이 끝없이 눈앞에 펼쳐지던 순간에 느꼈던 희열과 내가 고른 책을 들고 나올 때 느꼈던 뿌듯함 만큼은 생생하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은 꼭 만들어 주고 싶은데. 이것도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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