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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희 Oct 26. 2023

할까 말까?

프리랜서 3년 차, 번아웃이 오다

2018.05.25 제주


일 년에 두세 번 제주를 가고 매번 동쪽에서 머물렀지만 월정리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서울에서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기를 뺏기는 느낌이 들어 되도록 조용한 동네만 가는데 이미 월정리는 상업화되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월정리를 간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카페 '책다방'에 가기 위해서다. 

'책다방'을 알게 된 건 우연히 본 고등학교 동창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였다. 제주에 자주 가는 그녀가 올린 사진 중 내 맘에 쏙 드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책과 고양이가 있는 카페라니.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 모아 놓았잖아? 바로 해시태그에 적힌 #책다방을 타고 들어가 보니 월정리에 있는 카페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책다방에서 책을 펴놓고 이제 막 낮잠에서 깨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가방이와 놀아주는 중이다. 가방이는 카페 '책다방'에서 지내는 고양이 이름이다. 내가 갔을 땐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하얀 털을 가진 고양이가 다방이, 줄무늬가 있는 고양이가 가방이다. 내가 놀아준다기보다는 거의 나 좀 바라봐달라고 쫓아다니는 거지만. 

다시 맘 잡고 임경선 작가의 를 읽는데 그 순간,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은 문장을 만났다. ‘생각하는 것에만 너무 중점을 두다 보면 자칫 행동하지 않을, 움직이지 않을 부정적인 이유를 만드는데 생각이 더 쓰인다.’

나는 평소 생각이 많은 편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맞는 건가?’ ‘괜히 시간과 돈만 버리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실컷 생각만 늘어놓다가 결국에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뒤에 가서야 ‘그때 그냥 해 볼 걸.’하고 후회한다. 

되돌아보면 일단 저지르고 본 일들이 오히려 가져다준 기회가 더 많았다. 전주와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생채식 요리인 로푸드를 배운 덕분에 플리마켓에 나갈 수 있었고 원데이 클래스를 열어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독립 서점 '오키로북'에서 하는 글쓰기 모임을 나가면서 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읽기만 하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만 하느라 시도하지 않았다면 절대 생기지 않았을 일들이다. 

결국 가방이와 노느라 책은 다 읽지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필요한 문장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역시 ‘갈까 말까 할 땐 가고, 할까 말까 할 땐 하는 것’이 가장 후회가 덜 남는 길이다.


*부천에 위치한 독립서점으로 이곳에서 나의 첫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현재는 합정으로 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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