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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희 Oct 26. 2023

강제 로그아웃이 필요해

프리랜서 3년 차, 번아웃이 오다

2018.05.24 제주


지금 여기는 제주도. 한동리 카페 '요요무문*'이다. 숙소에서 3분 거리이고 창가 너머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서 벌써 이틀째 출근 도장을 찍는 중이다. 입간판에 쓰인 대로 '우주 최강 당근 케이크'라는 프라이드에 걸맞게 촉촉한 당근 케이크가 유명하다.


자연스레 나도 당근 케이크를 주문하려던 그 순간 신메뉴라는 '인절미 쑥 티라미수'가 눈에 들어왔다. 인절미와 쑥이 들어간 티라미수라니. 뭔가 상상이 안 되는 조합이지만 궁금해서 일단 시켰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길 기다리며 창밖을 보니 물질하는 해녀 삼촌들이 보인다.

사실 지난주까지 많이 지친 상태였다. 핸드폰 배터리가 15%가 되면 절전 상태가 되듯이 그나마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일의 양을 무리하게 늘린 게 문제였다. 아침에 일어나 자기 전까지 씻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보냈다.

잠을 자도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가 쑤시고 온종일 노트북 모니터만 보니 눈은 건조해졌다. 먹고 거의 움직이지 않아 체중도 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피곤해 보인다며 어디 아픈 거 아닌지 물을 정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도망치듯 제주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어느새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다. 제주에 오는 내내 ‘도착하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지.’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려니 자꾸만 할 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남들은 이 시간에도 열심히 무언가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 하는 맘에 조급해진다.


왜 나란 사람은 쉬러 와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자꾸만 무언가 하려는 걸까. 혹시 쉬지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건가. (평소엔 그렇게 열심히 사는 편도 아니면서)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지?

‘잠시 핸드폰은 꺼 두셔도 좋습니다.’

예전에 본 TV 광고 속 문장이 떠오른다. 남들의 속도만 따라가려 하다 보면 나 자신을 놓칠 때가 많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방전이 되기 쉽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로그인이 아니라 로그아웃이다. 무언가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우러 온 거니까. 그러니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자.

노트북을 덮고 가만히 제주 바다를 바라본다. 주문한 '인절미 쑥 티라미수'를 한 입 먹으며 고소하면서 뒤에 느껴지는 쑥의 진한 맛을 느끼니 비로소 제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 내가 제주에 오긴 왔구나.’


*2023년 9월 26일까지 운영 후, 영업이 종료되었다. 멀지 않은 한동리에 2호점 ‘비수기애호가’가 있으니 이 쪽으로 방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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