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고마리 씨앗의 잡도리 |우엉의 꽃말
새암은 시기의 순우리말이다.
타인에 의한 비자발적인 휴식을 하면서 우울과 과거의 끝나지 않는 반복은 연재일 또한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한데 지키지 못했다.
시기와 질투는 비슷한 갈래이다.
모두 왜곡된 스스로의 자기애에서 비롯된 어긋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감정이다.
두 감정은 사뭇 다른데 시기는 타인의 존재를 부수기 위해 실제 음해하는 행동을 일삼는다.
예를 들어 타인의 부, 명예, 자산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인간의 망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시기와 질투를 일삼는 부류는 거울을 보면 스스로 대단한 모두 갖춘 탑스타의 모습이다.
시기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외모중심적이라면 그들 만의 거울 속에서 세기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겸비한 탑스타라서 조금이라도 타인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잠깐의 순간에도 피해의식이 시작되어 음해를 시작한다.
실제 피해자에게 피해의식이라고 거짓된 프레임을 씌우기도 하고, 외모지상주의라는 사회적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며 , 질투와는 다르게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사회 탓, 남 탓을 한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뭐랄까.
시기자는 사실 가리지 않고 불특정다수의 자신의 시선을 앗아가는
누군가를 대상화한다.
말없이 지나가는 가만히 있어도, 그저 아직까지 부, 명예, 권력을 갖지 않는 사람이어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때 나만 모르는 누군가의 시기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단어로 표현하면 ‘적’이다.
온라인이던 어떤 상황과 장소에 관계없이
3초간의 스침으로 기분이 나쁘고 불쾌하고 강가에 내려가길 바라는 적이다.
단, 그 적이 된 대상은 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실제 그 주체자는 자신의 범주에 들어온 ‘적’이 보통의 삶을 산다면 굉장히
분개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존재를 파괴하기 위해 음해한다.
왜? 그러니까 왜?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불특정 한 사람을 포함해서 적이 되는 걸까? 인간이 아무리 감성의 포유류라고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사전과 여러 가지 심리학에 대한 검색을 해보니 시기의 대상은 원래 시기하는 주체와 관련이 가만히 조용히 잘 나가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게 매우 소름 끼치도록 놀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구체적인 이 음해를 야기시키는 ‘시기’라는 감정에 대해 서로 공존하는 평온한 사회를 유지시켜 주는 구체적인 법은커녕 피해주의자들이 권력이 된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에서 “비대면”만이 완벽한 보호를 해주는 현실에 대해 트리플액셀을 밟은 듯한 놀라움이다.
그 불특정다수를 시기질투 주체자들은 우엉의 꽃말 중 “인격자” 가 되진 않을 것이다.
진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정신병취급을 받거나 음해 때문에 희귀 질환에 걸린 나로서는 실제 정신병자, 시기질투자인, 학습력이 우수한 그들을 바꿀 수 없지만, 상식의 정상인들 또한 피해를 볼 것이다.
그들이 강자라는 권력을 쥐어 잡아 기이해지는 분위기에 사회적인 안정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어떤 것이던지 완벽하게 예측이야 할 수 없다. 다만 예측할 수 없는 이 혼란스럽고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담담히 우리네 가치관을 지켜주는 브런치처럼 그저 수용하고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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