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살의 나이에 ADHD인 것을 알았습니다.
[공황장애와 ADHD]
갑자기 무거운 주제를 꺼내는지 궁금하시지요.
몇몇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8월 공황장애를 경험하였고
한 달여 정밀진단을 거쳐 성인 ADHD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알려져 있는 증상입니다.
공황장애는 일시적인 것으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어요.
8월 트리거가 되는 사건이 있었고 극심한 공포감과 대인기피 증상이 있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숙소로 돌아와 계속 울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도 눈물을 흘린 기억이 손에 꼽는데 더구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울음을 터뜨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혹시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일 수 있었기에 지근거리에 있는 친구에게 상황을 알리고
울음이 나오는 데로 나 두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는 중간중간 유튜브와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예전부터 전두엽 기능이 약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뇌를 강화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각종 기억력 기술이라든지, 암기력을 높여주는 다양한 도서를 읽고 훈련을 해왔습니다.
공부해 왔던 뇌에 관련된 지식들, 군대에서 공부했던 우울증과 PTSD 지식을 총 동원해서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찾고자 노력했어요. 3일을 내내 울면서 자료를 찾았습니다.
9월 대형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실시했고 한 달에 걸친 뇌파, 혈액, 지능, 심리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웩슬러 지능검사는 127로 준수한 편이었지만 4가지 지능지수에서 매우 불균형한 수치를 보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각추론능력 145(상위0.1%) 작업기억 96(상위64%)으로 시스템, 기계를 파악하거나
문제해결능력은 우수하지만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도록 도와주는 작업기억이 저하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ADHD증상으로 10~20 정도 IQ가 낮게 나온 것 같다고 하는데
수치적인 부분 보다 ADHD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매우 컸습니다.
뇌파검사도 스트레스 지수와 저항력은 우수하여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뇌의 피로도가
매우 심했습니다.
ADHD는 신경전달물질(호르몬) 문제로 지능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본능 자체에 충동성이 없어 전두엽의 통제가 없이도 과잉행동장애가 없기에 41년 동안
ADHD인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ADHD인들이 겪는 내면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특히 직관적으로 표정을 읽거나 보통사람처럼 사고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저의 경우는 임상심리상담사 소견으로 문제해결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되지만 타인이 이해를 못 하거나 매번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성마르게 화를 내거나 타인과의 소통을 하지 않고 대부분 스스로 해결하면서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ADHD증상은 도파민의 유지가 어려워 흥미를 유발하는 전두엽 기능이 꺼졌다 켜졌다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어떤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집중력을 발휘하려고 해도 전두엽에게
흥미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됩니다.
주의력결핍이라 하지만 정확하게는 주의력을 자의로 통제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주의력 능력이 100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60/25/15 이런 식으로 의식적으로
분배를 하는데 ADHD인은 20/10/10/10/10/10/10/10/10 이렇게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흥미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90/10 이렇게 과몰입을 하게 됩니다.
저는 정말 다행으로 집중력을 담당하는 또 다른 뇌인 측두엽 기능이 좋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ADHD인에게는 정말 힘든 조직인 군대에서 7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ADHD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데 저는 군대에서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지 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상식적인 일이 저에게는 상식이 아니고 저에게 상식적인 일이 남들에게 상식이
아닌 삶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일부러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오해와 편견 속에서 군생활을 하였습니다.
"보통사람은 너처럼 생각하지 않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지 하나하나 익혀야 했습니다.
학습을 하거나 전략을 짜고 토론을 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더 많은 오해를 불러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반인 보다 도파민 유지에 더욱 어려움을 겪어
다양한 감정과 상호작용을 통제하는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아스퍼거 증후군과 유사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며 타인의 감정을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순수하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만 대화를 하여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시점에는 기억력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대화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대화를 나눈 사람 얼굴을
기억 못 하기도 했습니다.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저하되어 있었다는 것은 오랫동안 인지하고 있었기에
저는 상대적으로 발달한 추론능력을 이용해 그날 있을 법한 일을 최대한 많이 예측하고
가정해 놓고 어떤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행동할지 계획을 세워놓는 방식으로
남들에게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그 부분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조직에서 오랜 시간 있었기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행위였습니다.
군의관 출신이라던 의사 선생님은 높은 집중력과 정신력이 필요한 특전사에서
지휘관을 잘 해낸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 해주셨지요.
ADHD인들은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훈련하는 것도 어렵고 고통을 참아내는 뇌의 능력도
저하되어 있어 이 부분 때문에 ADHD진단을 내리는데 많이 신중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고 전역 후 만난 도시재생과 마을공동체는
신세계였습니다.
이상적인 시스템 이론인 지속가능한도시와 공동체, 사회적경제 시스템은
너무도 즐거운 분야였습니다.
특히 해당 분야에 관련된 사람들의 호혜적이고 배려하는 특성은 저에게 매우 큰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늘 긍정적일 겁니다.
ADHD인은 편도체 기능도 항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우울증, 불안증 등이 있지만 꾸준히 운동을
해온 덕에 지금의 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에도 목디스크가 신경을 눌러 오른쪽 가슴부터 손까지 운동능력을 상실했었습니다.
움직이는 대는 문제가 없었으나 힘을 90% 이상 못쓰게 되었지요.
재활하는데 2달이 걸렸습니다. 어쩌면 기적적인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훈련한 아주 유용한 것 중 하나가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신종플루가 걸려도 대상포진이 걸려도 코로나가 걸려도 목디스크가 터져도 저는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ADHD라는 큰 산이 제 앞에 왔습니다.
ADHD는 가난한 사람에게 더욱 가혹한 증상입니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눈치, 일머리 등에 관련된 전두엽 기능은 시급 10,000~15,000원 구간에
몰려 있는 일들이 전두엽 기능이 우수해야 동시에 여러 개 일을 처리하면서 경제적 가난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DHD로 유명한 사람은 조지부시 2세, 일론머스크입니다. 부자인 사람들은 굳이 남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비서나 보좌관을 두어 잡다한 일을 처리하게 하고 일정까지 관리해 주기 때문에
그들에게 ADHD는 큰 걸림돌이 아닙니다. 다만 늘 생각에 잠기는 특성 때문에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바지자크를 올리지 않는 정도가 그들에게는 문젯거리입니다.
친한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다들 윈도우즈인데 나만 맥OS같아 아니 리눅스인가? 비슷해 보이지만 호환이 잘 안 돼"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겪었던 학창 시절.
이제라도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어 마음 한편에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습니다.
저는 저와 같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도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남몰래해왔던 사회성을 기르는 많은 훈련들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군생활 선택은 신의 한 수였어요.
사람들이 그랬지요 "군대 다녀와야 인간 된다고"
인간은 사람인에 사이 간을 씁니다.
사회성을 내포하는 말이지요. 남들은 2년이면 되는데 저는 7년이나 필요하구나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통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뿐 아니라 식탁에서 수저를 놓는 사소한 것들
술자리 예절까지 쌍욕을 먹으면서 배웠더랬지요.
남들이 눈치껏 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늘 생각에 잠겨 있으니 제가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은 고사하고 상대방이 인사를 해도
인지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얼굴을 기억 못 하는 경우도 많고요
남들은 직관적으로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는데 저는 미적분을 쓰는 뇌를 사용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해야 하니 분위기를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기 있는 개그프로그램만 모아놓은 동영상을 하루 종일 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무엇에 즐거워하는지 공부해 왔고 함께 즐거워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늘 그래왔듯이 스스로 설 것이고 스스로 서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울 것입니다.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순간에도 나만은 나를 믿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독이며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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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나에 대해 썼던 이종건 사용설명서. 4년이나 지났는데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게 웃기네.
https://brunch.co.kr/@orothy/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