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없는 우주에서 아주 가끔, 중심이 생길 때
나는 별의 가게에서 일했다.
정확히 말하면, ‘별들의 균형을 맞추는 가게’였다.
그곳에선 별 하나하나에 있는 이상한 끌림을 조금씩 조정했다.
어떤 별은 너무 무겁고, 어떤 별은 너무 가벼웠다.
그러면 은하계 전체가 기울었고, 누군가는 매일 이유 없이 슬펐다.
그건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지구에 눌러 앉아 울고 있으면,
목성에서 공기방울이 터지는 식이었다.
우주는 연결되어 있었고,
우리는 그 연결을 “균형”이라 불렀다.
나는 매일 ‘중심값’을 계산했다.
그날그날, 어디에 무게가 실리는지,
어디가 살짝 들려야 하는지.
그건 마치 심장박동 같았다.
누군가는 그걸 ‘질서’라 불렀지만,
우리는 그저 “오늘은 이쪽으로 기운다”고만 말했다.
균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별들이 그 보이지 않는 리듬을 따라 돌고 있었다.
그날, 나는 지구 쪽 중력을 살짝 조정했다.
누군가가 커피를 엎지르지 않게 하려는
작은 배려였지만,
그 사람은 그날 갑자기 회사를 때려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좋은 일이라고 판단되었다.
내 상사는 늘 말했다.
“중심은 보이지 않아야 해.
사람들이 중심을 보게 되면,
거기 올라가고 싶어 하거든.
그러면 전체가 무너져.”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게중심’을 말하지 않고,
그저 한쪽으로 살짝 기운 뒤 “이건 자연이에요”라고 말했다.
브랜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어디에도 없던 무게중심 하나를 딱 찍어두고,
“이게 원래 중심이었어요”라고 우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안다.
그게 누군가의 선택이었다는 걸.
그 선택이 멋있어 보인다는 걸.
나는 별의 균형을 맞추면서 깨달았다.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언제나 정해진 게 아니라,
정하는 자의 손끝이라는 걸.
우리는 중심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에,
‘중심을 만든 자’를 본능적으로 따랐다.
그가 정말 옳은 선택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첫 번째로 무게를 실은 자’였고,
모두가 그 위에서 발을 맞췄다.
그게, 존경이라는 감정의 정체였다.
어느 날, 나는 중심을 조정하지 않았다.
그저 우주의 기울기를 지켜봤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자리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거기에 앉아 ‘정상’이라 불렀다.
“오늘도 누군가 중심을 만든 거야?”
“아니. 오늘은 스스로 중심이 된 거야.”
“그게 가능해?”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가능해졌어.”
그날 이후, 나는 중심을 조정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 중심이 생기는 소리를 들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심장이 다시 뛰는 소리.
누군가의 눈빛이 ‘여기서 시작이야’라고 말하는 소리.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무게중심은 항상 저쪽이더라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건 누가 먼저 발을 디뎠는가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 발자국 위에,
우리 모두의 질서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