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나는 어느 쪽의 버튼을 누를지 고민한다
나는 어느 날 리모컨이 되었다.
채널을 바꿀 수 있었고, 볼륨도 조절할 수 있었다.
단,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물론 처음엔 몰랐다.
출근길, 갑자기 오른손이 들려 올라가며 외쳤다.
“오늘은 한판 붙자!”
내가 놀라 말리기도 전에,
그 손은 회의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이 안건,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회의실은 정적.
그 뒤 몇 초 후, 왼손이 따라 일어났다.
조용히 노트북을 들고 회의록을 정리하며 말했다.
“같은 안건입니다만, 데이터는 다르게 말합니다.”
모두가 그녀를 봤다. 아니, 나를.
난 내 안의 둘을 봤다.
빨강 버튼이 눌렸고,
바로 이어 파랑 버튼이 눌린 거였다.
그날 밤, 나는 거울 앞에서 실험을 해봤다.
리모컨엔 두 가지 버튼이 있었다.
빨강 — 도전, 돌진, 충돌
파랑 — 관찰, 분석, 수용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 매력적이니?”
거울 속 내가 웃었다.
“매력은 미소가 아니라 순발력이야.”
상황을 읽고, 필요한 나를 호출할 수 있는 능력.
다음 날, 난 지하철에서 벌어진 실랑이 사이로
파랑 버튼을 눌렀다.
침착하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으세요?”
그리고 뒤이어 빨강을 눌렀다.
“지금 이러시는 건 부적절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봤다.
그 눈빛은 ‘이상한 사람’과
‘이상하게 멋진 사람’ 사이였다.
나는 그 사이가 좋았다.
리모컨은 고장 나지 않았다.
다만, 설명서는 없었다.
가끔 너무 빨리 빨강을 눌러버리면 감정이 과열됐고,
너무 오래 파랑을 눌러두면 모든 게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했다.
어떤 날은 “감정 과잉”이라고 진단받았고,
어떤 날은 “공감 결핍”이라고 의심받았다.
어쨌든 나는 나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그건 꽤 강력한 무기였다.
왜냐하면 대부분은 자신에게 어떤 버튼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시간이 지나, 나는 버튼을 동시에 누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때,
파랑으로 듣고, 빨강으로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시험하려 할 때,
빨강으로 맞서고, 파랑으로 웃어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리모컨 없이도 그걸 할 수 있게 됐다.
그날, 거울 속 내가 말했다.
“넌 이제 리모컨을 쥔 존재가 아니라, 파장을 조율하는 사람이다.”
조작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울려 퍼지는 공명 같은 감각
나는 웃었다.
그건 빨강도 파랑도 아닌,
보라빛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