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의 농도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진실을 놓친다

by 오로보이

나는 과거에 ‘진실 수집원’이었다.
그 직함은 그럴싸했지만, 실제 업무는 잡무였다.
진실은 단백질이 아니라,

패턴과 인식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이었고,
나는 매일 그 화학 반응의 찌꺼기를 닦는 사람이었다.


행성 4995 시민들은 “진실 필터”를 단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 안경은 말해줬다.
“이 뉴스는 87% 진짜입니다.”
“이 연애는 54% 진실입니다.”
“이 감정은 22% 미디어 학습에 의한 착시입니다.”


아무도 그 수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면 모두가 ‘좋은 패턴’을 원했기 때문이다.
정연하고 반복 가능한, 안전한 생각.


그리고 또, ‘꽉 찬 인식’도 원했다.
공백 없이 채워진 이유, 빠짐없는 설명,

논리로 빼곡한 확신.


진실은 늘 그 틈에 있었지만,
아무도 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이상한 요청을 받았다.
“지하 33층에 폐기된 진실 데이터

백업을 다시 복원해주세요.”
고장 난 진실이라니. 우스운 말이었다.


33층에선 낡은 기계가 먼지를 뿜고 있었다.
그 안에는 하나의 오래된 에피소드가 저장돼 있었다.

파일명:
childhood_memory_00677.RAW
설명: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도 없는데.”


나는 영상을 열었다.
정말로… 화면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소리가 났다.
“괜찮아. 넌 그렇게 이상하지 않아.”


아이의 얼굴은 잠시 멈칫하더니 울기 시작했다.
그 표정은, 내가 수집해 온 어떤 진실보다

더 진짜 같았다.


나는 그 순간, 매뉴얼을 버렸다.
패턴도, 인식도 아니었다.
그건… '틈'의 소리였다.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고,
반복도 불가능하며,
단 한 번만 존재했던 작은 접촉.


나는 몰래 복원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버린 감정, 놓친 말, 의심했던 기억.


그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아버지가 “오늘 힘들었지”라고 말했는데, 본인은 기억을 못했다.

연인이 “사랑해”라고 한 날, 0.5초간 눈을 피했다

회사 동료가 “나도 몰라”라고 했지만, 손은 이미 계획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이 데이터를 모아
'틈의 지도'를 만들었다.
패턴은 좌표였다.
인식은 높이였다.
하지만 진실은 ‘기압 차’로만 감지되었다.


틈이란, 무언가 빠져나갈 수도 있고,
무언가 들어올 수도 있는 문.
그 문은 작지만, 거짓도 진실도 아닌 상태를 허용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진실은, 완전히 맞는 것도,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스르륵’ 피어오르는 것이라는 걸.


정보국은 내 행동을 알아차렸다.
나는 호출되었다.


"당신은 왜 오류 데이터를 모았나?”
“그게 틈을 보여줍니다.”
“패턴도 없고 인식도 없는 걸 보고 싶다는 건가?”
“네. 거기서 진실이 나옵니다.”
“당신의 직함을 회수합니다. 당신은 이제 ‘진실’에서 해고됐습니다.”


그건 이상한 문장이었다.
‘진실에서 해고됐다’니.


나는 짐을 싸며 생각했다.
어쩌면 진실이란,
‘일시 고용’일 뿐인지도.


나는 지금도 가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을 주워 모은다.
그것들은 작고 불안정하지만,
유독 눈부시다.


마치…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틈새로 새어 나오는 먼지처럼.


그 안엔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

“괜찮아. 넌 그렇게 이상하지 않아.”


진실은 완벽하지 않다.
정확하지도 않고, 종종 말이 어긋난다.
하지만 그 모든 찰나들,
‘좋은 패턴’이 미처 덮지 못한 어긋남,
‘꽉 찬 인식’이 애써 무시한 틈,
그 사이에서만 진짜가 태어난다.


진실은 자주 사라진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우리 안의 작은 틈이
아직 열려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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