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찝찝하게 왜 하필 오늘 비가 온담?"
추가 스파링 연습을 하기 위해 저녁에 체육관으로 향하는 길, 일기예보가 쓸데없이 정확했다.
등에 맨 가방에는 복싱화, 헤드기어, 16oz 글러브, 스트랩. 마우스피스까지. 짐이 한가득이었다. 가방 안으로 빗물이 흘러들어 가 내 복싱 장비들이 젖을까 종종거리며 걸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익숙한 냄새와 소리가 들려온다. 비까지 와서 습한 날씨 덕에 땀냄새는 더 짙게 깔려있고, 체육관의 유리창은 회원들의 열기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땀 흘리는 많은 사람들 틈에 있으니 절로 정신이 든다. 두발 무겁게 걸어왔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운동모드로 전환.
당장 이번 주 토요일이 시합이다. 시합을 앞둔 일주일이 부상이 제일 많다고 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뚝- 뚜둑-'
무릎이며, 허리에서 아우성이다.
콩콩 뛰며 몸에 열도 올렸다. 링 위로 올라갔다.
스파링 1라운드에는 몸과 마음이 온전히 덜 풀려서 항상 무의미한 움직임을 행한다.
아니나 다를까. 마찬가지로 내 팔과 다리는 마음과 다르게 이리저리 휘둘렸다. 마음은 급한데 몸뚱이는 허우적거리는 꼴이라니.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관장님이 스파링 지도를 해주신다.
"지금 라운드에서 네가 하고 싶었던 공격은 뭐였어?"
말문이 막혔다. 그런 건 내 머릿속에 없었다. 그저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공격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스파링을 지금껏 하고, 복싱을 이만큼 했는데, 생각 없는 공격이라니. 그동안의 시간들이 아득했다.
"하고 싶었던 공격... 없었어요. 그냥 움직였어요."
"뭐라도 하나, 이번 판에서는 꼭 이걸 하고 내려오겠다! 이런 게 있어야 해. 그러지 않으면 상대가 공격하는 대로 흔들리게 되어있어!!"
그리고 이어지는 관장님의 폭풍 강의.
생체는 뒤로 빠지면 감점받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기세로 상대를 치고 나가고 너무 조급해 보이는 공격은 금물. 선공으로 밀고 들어갔다가 여유 있게 한 번씩 뒤로 빠져주기. 인생이든, 시합이든 '기세'가 답!!
심판에게 '여유'있어 보이는 게 중요하다. 경기가 이뤄지는 동안 지쳐 보이는 선수가 감점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쳐도 지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기. 심판은 공격과 방어를 다 보고 있다. 그러니 무의미한 공격 말고 과감하게 들어가서 정확하게 공격하기.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도 방법! 상대가 가는 방향을 따라가며 마치 거울처럼 공격. 패링을 해주다가 빈 곳이 보인다 싶을 때 잽-!
창밖으로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관장님의 설명 역시 내리는 비와 같았다.
집에 가기 전까지 관장님의 설명을 곱씹으며 연습을 했다. 움찔움찔 공격을 할 듯 말 듯, 스탭을 많이 움직였다. 그제야 겨우 관장님께 '좋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떨렸다가 설렜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심장은 요동을 쳤다.
'나, 지금 떨고 있니?... 기세라고 했다. 즐기자. 즐기다가 돌아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