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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고아사랑협회 Feb 17. 2021

난 왜 그곳에 살았을까?

매일이 무서웠던 그 날 그 기억들의 조각...

세 살. 

쿵. 

내가 어딘가에 크게 부딪혀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분홍색 스웨터 팔 소매가 빨갛게 피가 물들어갔다. 

내가 왜 던져지게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피가 물들던 스웨터를 보면서 큰 소리로 울었다. 

다섯 살. 

군인이었던 그 사람은 세 살이 된 남동생을 '남자는 용기가 있어야 된다'며  개 우리에 나와 동생을 넣었다.  

나는 어릴 적 군대 관사에서 살았는데 큰 개를 키우고 있었고 큰 우리가 있었다. 

동생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와 개가 흥분해서 '컹컹' 거리던 소리, 우리에서 나던 냄새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은 지독하게 폭력적이고 엽기적이었다. 

이혼으로 법정에 서던 날. 그 사람은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고 울먹였다. 


일곱 살. 

자살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죽기로 결심했다. 칼로 배를 찌르면 죽을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내가 나를 죽이기엔 아직은 너무 어렸다.

 

겨울에는 팀스프릿트 훈련이란 걸 몇 개월 동안 떠나곤 했는데 그 기간이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냥 그 기간이 좋았다.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서 한 이불에서 자기 전까지 웃고 떠들었다. 

그림자놀이를 참 좋아했다. 엄마가 손으로 만들어주는 그림자를 보면서 새로운 그림자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다음날 종이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나는 당시 꽤 일찍 한글을 뗐는데, 글을 모르는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걸 좋아했다. 


<인어공주>는 다섯 살 때 처음 읽었는데 퍽 슬펐다. 사랑이란 건 너무 슬프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엄마에게 인어공주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엄마 사랑은 그렇게 슬픈 거야?'라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사랑하면 원래 기쁜 거라며 그런데 너무 사랑하면 그렇게 희생도 한다'며 대답을 해주었다. 

가만히 난 있다가  '난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다' 고 했다. '아빠가 매일 때려서 나는 너무 슬프다'라고 대답했더니 엄마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열두 살 이전까지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그 사람이 해외에 2년 동안 나가 있을 때였다. 정말 그 사람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가 마중을 나갔던 그 날  절망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았다. 


나의 인생의 첫 기억. 

나의 가장 풋풋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은 그렇게 폭력과 슬픔, 잔인함으로 얼룩져 있다. 


열 살 무렵까지는 마구잡이로 맞다가 어느 날부터 인가 맞기 전에 그 사람은 나에게 옷을 모두 벗으라고 명령했다. 속옷까지 모두 벗긴 뒤 마구잡이로 때렸다. 아마 내가 도망갈까 봐 그랬으리라 짐작이 된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나는 그렇게 맞았다.  

열한 살. 

늦가을과 초 겨울 사이 어느 날 밤.  맞다가 결국 대문을 열고 도망을 갔다. 

울면서 발가벗은 채로 맨발로 뛰어 나가 열심히 뛰었다. 입에서 김이  서렸다. 죽을 것 같았고 너무 무서웠다.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난 그 오토바이 소리가 그 사람인 걸 알았다.  점점 그 소리가 귀에 가까이 오는데 내가 뛰어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건지, 무서워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건지... 그냥 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갑자기 내 몸이 논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 차갑고 딱딱한 논바닥 위로 내 몸이 부딪힐 때 아프진 않았지만 

너무 놀라서 울음을 멈췄다. 흙인지 뭔지 모를 차가운 것들이 내 몸을 휘감고 난 그 자리에서 그냥 누워있었다. 


그 사람이 오토바이로 날 뒤 쫓아와서 내 뒤통수를 때리고 나는 그대로 옆에 있는 논바닥으로 구른 것이다. 

뒤통수가 아프단 생각, 떨어져서 아프단 생각보다는 다시 그 집으로 끌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무서움으로 덜덜 떨렸다. 그리고 기도 했다. "하나님, 이 모든 게 다 꿈이라고 해주세요"


하지만 꿈이 아닌걸 바로 알았다. 그 자리에서 날 일으켜 세워서 집까지 달리게 했으니까.  그리고 못다 맞은 매를 다시 맞았다.  혼자서 그 흙들을 씻어내면서, 내 뒤통수에 엄청난 큰 혹을 확인하면서 또 기도 했다. 

"하나님, 이 모든 게 다 꿈이라고 해주세요."


#보호 종료 아동 #보호대상 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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