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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미티스 Oct 15. 2023

프랑수아 오종의 <사랑의 추억>(1)

원제목 <모래 밑>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샤를로트 램플링을 알게 된 것은 우디 앨런의 1980년 작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에서였다. 이 배우의 강렬한 이미지는 이 작품 한편으로 그의 모든 작품을 본 것 같은 착각에 이르게 했고, 그 착각 속에서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언젠가 영화 잡지 ‘프리미어’의 부록으로 딸려 나오는 한 장의 영화 포스터를 통해서였다.     



나는 남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무실 한쪽 벽에 포스터를 붙였다. 벽에 뭔가를 붙이고 거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게는 하나의 파격이었고 이런 일종의 불가항력 앞에서의 약간의 저항으로 언제든 떼어낼 수 있게 뒷면을 테이프로 살짝 붙였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침실의 한 벽을 온통 영화 포스터로 발라 버리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취향이 다른 룸메이트에 대한 배려로 아직 그런 파격을 저지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잠재되어 있거나 불발에 그친 온갖 종류의 파격이 내 삶에 점철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침실의 벽은 못 자국 하나 없이 아직 하얀 채로 남아 있다. 파격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거나 불발에 그치고 만다. 사진 속의 램플링은 이제 젊지 않았고, 화면 가득 정면을 클로우즈업 시킨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이가 없인 찍을 수 없는 작품이었던 가보다 하고 앞질러 생각했다.     


개봉 영화를 직접 보기 전에는 비평을 먼저 읽지 않는 습관 때문에 ‘카이에 뒤 시네마’의 표지에 그 포스터 사진이 실릴 때까지도 그저 프랑스와 오종이라는 감독의 이름과 ‘사랑의 추억(원제는 <모래 밑 Sous le sable>)'이라는 제목 한 줄만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책상 서랍 한  구석에 깊숙이 넣어 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의 명함처럼 샤를로트 램플링이라는 이름이 다시 한번 다가왔다.     


25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부부가 있다. 그들은 여름이 되면 시골집으로 휴가를 떠난다. 번갈아 가며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내려 담배를 나누어 피우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에는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서로에게 언제나 연인이기를 꿈꾸는 사람들 사이엔 어떤 긴장감이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것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사이라면, 그 시간만큼, 공유할 수 없는 고독의 자리가 있다. ‘신나게 나이 먹는 법’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세상에 당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작은 시골집에 당도하면 그동안 비워 두었던 집안의 가구 덮개를 걷어 내고 스파게티를 만들어 포도주 한 잔과 함께 조촐하고 말없는 식사를 함께 한다. 남자는 집 앞의 숲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여자는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와 배려로 남편의 주위를 향기처럼 맴돈다. 피곤하지 않아? 이렇게 먹어야 체중을 줄이는데 도움을 줄 거야. 내일 바닷가를 산보할까? 날씨가 좋으면. 이런 대화를 나누며.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울퉁불퉁한 나무의 표면을 잠시 멈추어 쓰다듬는 남자의 손과, 숲에서 우연히 발견한 마른나무둥치 밑에 바글바글하던 개미 떼를 비추는 카메라 앵글.     


화창한 날씨의 바닷가. 어떻게 노년에 접어든 여자의 몸에 불필요한 살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을까.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장면에서 그것은 그녀가 젊은 시절부터 운동으로 몸매를 다져 온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허벅지까지 옆선이 터진 소매 없는 붉은 원피스. 선글라스. 바닷바람에 날리는 단발머리. 어디선가 본 듯하다.     


여기서 읽은 시 한 줄과 저기서 본 영화의 한 장면이 겹치고, 어딘가에서 들은 한 소절의 멜로디가 한 폭의 그림을 보다가 떠오르는 일이 있곤 하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 시인은 ‘바닷가에 집을 지으면 쓸쓸하지만 치열해지고 강가에 집을 지으면 외로우면서도 평화롭다’ 했다는데 그래서 일상이 있는 파리의 집은 센강변이고 사건이 일어나는 랑드의 시골집은 바닷가인가. 바다는 인간사의 원형으로 각인된다. 끊임없이 밀려오며 어김없이 빠져나가는 파도, 포말과 함께 내내 부서지기만 하는 모래알. 고정되지 않은 해안선. 어린 시절, 파도가 저렇게 출렁이는 해안선을 지도 위에서는 어떻게 움직이지 않는 실선으로 그릴 수 있는 걸까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육지의 윤곽은 희미해야 할 것 같았다. 또 멀리로 떠오르고 다시 지는 해.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배들. 그 바닷가에서 여자가 태양의 매혹적인 애무를 받으며 모래사장에서 잠든 사이 남자는 사라진다. 그냥 사라진다. ‘사라지다’라는 동사는 그 어느 때보다 단순하다. 해변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고 당황한 여자는 맨발로 차를 몰아 실종신고를 내고 며칠을 서성이다 파리의 집으로 돌아온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여자의 친구들은, 정신과 상담이나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짧은 여행을 권해오고, 매혹적인 여자에게 정신을 뺏기는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하지만, 여자는 집안에서, 돌아온 남자, 아니,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던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도 여자는 남자의 넥타이며 입성을 구경하고 쇼핑하고 집으로 돌아와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녀만의 남자를 만난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남자는 사라졌지만 동시에 곁에 있다. 존재와 부재의 혼재가 시작되었다. 여자는 내면적으로 여전히 남자와 함께이고 은행 계좌가 정지되어도 남자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고 체취를 맡을 수 있으며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여자.     


자동 응답기에 남겨진 새로운 남자 뱅상의 데이트 신청을 확인하는 사이, 마리의 남편 장이 등 뒤에서 묻는다. 그 남잔 누구야? 화들짝 놀란 마리는 새로 산 넥타이를 건네지만, 장은 계속 묻는다. 잘 생겼어? 모르겠어. 내 취향은 아냐. 그와 키스했어? 응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했잖아. 저녁 초대에 응할 거야? 모르겠어.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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