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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미티스 Oct 31. 2023

프랑수아 트뤼포 <쥴 앤 짐> (1)

40년에 걸친 것치곤 다소 짧은 리뷰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옛날, 옛적 1980년대.     


대입 원서를 쓰던 어느 날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넌 글을 잘 쓰니 국문과에 가라고 권유하셨다. 수학 선생님이셨던 그분은, 글 잘 쓰면 국문과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교내외 백일장에서 상을 몇 번 받기는 했지만, 난 글을 잘 썼다기보다는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위로 언니 둘이 모두 국문과 출신이어서, 내게 국문과는 <올드 보이>에 나오는 오대수의 군만두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영문과에 가자니,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거긴 왠지 공부는 잘하지만 따분한 범생이들이 많을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당시 교지 편집위원이자 학생 기자로, 교지와 교내 신문에 실을 글을 쓰기 위해 프랑스 작가의 작품 한두 편을 읽고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고상한 척하고 있던 터라, 조금 더 폼을 잡기 위해 불문과를 지망했다. 아니면 쥘 베른의 《십오 소년 표류기(원제목: 2년간의 방학)》에 나오는, 내 어린 시절 잠재의식 속의 아이돌, 프랑스 소년 브리앙 오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학교에선 별로 배우는 것도 없었고, 마음 붙일 곳도 마땅치 않아 ‘불란서 문화원’(그때는 프랑스 문화원을 그렇게 불렀다.) 지하 상영관을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이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아마도 그때 내 앞자리나 뒷자리에, 지금은 대한민국, 더 나아가서 전 세계의 영화계를 주름잡는 감독들이 함께 앉아 있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르누아르 상영관에서는 옛날 영화를 주로 상영했는데 무성영화에서부터 고전주의, 초현실주의, 누벨바그, 70-80년대 코미디 영화 등을 섭렵했다. 프랑수아 트뤼포도 그때 알았고, <쥴 앤 짐>(국내에는 이 영어식 타이틀로 소개되었지만 프랑스어로는 ‘쥴’이 아니라 ‘쥘’이다. 이하 제목을 제외하고 ‘쥘’로 표기.)은 80년대의 20대 입장에서는 꽤 충격적인 영화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선입견이나 판단의 기준들을 모두 헝클어버리는, 그래서 더욱 참신하고 멋졌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적어도 그때의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게다가 흑백영화였다. 흑백영화는 내 안의 근원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오브제 중 하나다.      


1차 대전 전야의 파리. 프랑스인 짐과 오스트리아인 쥘은 단짝 친구다. 두 사람은 조각가 친구 알베르의 집에서 한 여인 조각상의 평온한 미소, 비웃는 듯한 입매를 보고 홀린 듯 매료된다. 얼마 후 쥘의 집에서 열린 식사 자리에서 그 조각상과 미소가 닮은 카트린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철제육교 위에서의 달리기 시합 장면에선, 남장한 카트린이 제멋대로 반칙을 하고, 비가 오면 내일 바다로 떠난다는 계획을 자기 맘대로 정한다. 쥘은 자유분방하고 버릇없는 카트린에 대해 짐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 아버지는 부르고뉴 귀족 출신이고 어머니는 영국인 평민이라 중간을 몰라. 모든 사람을 가르치려 들지.

- 뭘 가르치는데?

- 셰익스피어.     


    

쥘이 처음 카트린을 만난 쥘의 집 정원. 지금은 정문만 남아있는 파리 20구의 빌라 오토즈. (출처: Paris-bise-art)


그녀를 흠모하는 두 사람은 늘 붙어 다니지만, 카트린은 쥘과 결혼하고, 전쟁이 터져 쥘과 짐은 각자의 국적에 따라 징집된다. 따라서 두 사람은 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두 사람은 공습이 있을 때마다 자기 손으로 상대를 죽이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한다. 전쟁이 끝나고 짐은 오스트리아에 사는 쥘과 카트린을 방문한다. 쥘은 카트린이 결혼 생활 내내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있다고 고백하며, 짐에게 그녀를 만나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를 완전히 잃어버리느니 짐을 통해서라도 붙잡아 두고 싶은, 병든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는 알았을까?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 앙리 피에르 로셰는 전업 소설가는 아니었다. 화가 수업을 받은 그에게 가장 주된 활동은 예술품 수집이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동명의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창작되었고, 트뤼포 자신도 로셰는 전업 작가는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 <쥴 앤 짐> (1962)뿐 아니라, 로셰의 또 한 편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두 영국 여인과 유럽대륙> (1971) 또한 9년 뒤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전자는 한 여자를 좋아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 후자는 한 남자를 좋아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쥴 앤 짐>에서 짐의 대사 중에 알베르 렐 선생의 가르침을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 알베르 소렐 선생은 내게 말했지. ‘돈이 많은가? 조상이 훌륭한가?’ 모두 아니라고 하니 외교관의 꿈은 접는 게 좋겠다더군. ‘그럼 무엇이 될까요?’ 하니 ‘호기심 많은 사람이 돼라’고 하셨어. ‘여행하고, 글 쓰고, 번역하고, 도처에서 사는 법을 배우게. 미래는 호기심을 직업으로 가진 자의 것이네. 프랑스인들은 너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어.’ 라며.     


이 대목에선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1962년 작이고, 소설은 1953년 작이었음에도 이건 완전히 내 얘기다. 나 역시, 여행하고, 글 쓰고, 번역하고, 도처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INTP 형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동인이 호기심이라고는 하나, 호기심을 충분히 직업으로 가졌는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 왜냐면 직업이란 밥을 벌어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로 외교사 전문가였던 알베르 소렐은 실제로 앙리 피에르 로셰의 스승이기도 했고, 위의 대사 중, ‘여행하고 글 쓰고 번역하고 도처에서 사는 법을 배우게.’라는 말은 로셰가 직접 들은 스승의 조언이기도 했다. 로셰와 트뤼포의 공통점 하나는 두 사람 모두 여성 편력이 매우 심했다는 것이다. 트뤼포의 또 다른 작품 <여자를 좋아한 사내(L’homme qui aimait les femmes)>의 주인공은 로셰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편이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한 편의 주인공은 그를 모델로 삼았으니 트뤼포 작품 세계에서 로셰의 영향은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삼각형의 한 꼭짓점 카트린의 출현은 예기되어 있었다. 쥘과 짐의 지인인 조각가가 그들에게 보여준 조각상을 똑 닮았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내내 삼각형을 그리고 있다. 나머지 두 꼭짓점은 때에 따라 변하는 삼각형이다. 10대, 20대는 한창 사랑의 ‘놀이’를 하는 때다. 때로는 우연을 걸고 도박을 하는 심정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화살표가 끊임없이 어긋나기도 한다. 나는 쟤를 좋아하는데 쟤는 걔를 좋아한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하며 남들 눈에는 끝이 났다고 하는데 저 혼자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있기도 한다. 청춘의 놀이. 놀이터 한가운데에 서 있는 그 청춘의 눈에는 카트린의 삼각형 놀이가 재미있게 보일 수도 있었다. 1962년에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모든 여자들은 카트린이 되고 싶어 했고, 모든 남자들은 짐이 되고 싶어 했다고 할 만큼, 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신드롬에 가까웠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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