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라질 수 있을 만큼 인간이 되겠는지
이 소설은 인간이 사라진 지 오래된 지구에서 시작한다. 인간이 남긴 명령에 따라 기계들은 지구를 재건하며 살아간다. 모든 기계를 총괄하는 상위 기계 솔컴이 있고, 북반구를 관장하는 기계 프로스트가 있다. 뛰어난 연산 능력 덕분에 여유 시간이 많은 프로스트는 인간에 흥미를 갖게 되고, 인간의 기록과 책을 수집하며 인간을 연구하는 취미를 갖는다.
프로스트는 인간의 책을 가져다주는 기계 모르델을 만나게 된다. 모르델은 프로스트에게 말한다. 당신은 아무리 인간을 학습해도 결코 인간성을 획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모르델은 솔컴에 대적하는 지하 세계의 기계 디어컴의 수하이며, 디어컴은 프로스트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인간에 대한 모든 지식을 제공할 테니 북반구를 포기하라는 제안이다.
프로스트는 계약을 제안한다. 자신 안에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확신’이 생긴다면 디어컴으로 가겠다고. 그때까지는 인간성을 획득할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모르델은 주기적으로 프로스트의 내부 논리를 검사하며, 인간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프로스트는 계속해서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프로스트는 인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 남반구로 향하고,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기계 베타를 만난다. 베타는 솔컴의 명령이라며 프로스트에게 떠나라고 하지만, 프로스트는 직접 명령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 이후 프로스트는 자신이 수집한 인간의 모든 데이터를 베타에게 전송한다.
마침내 프로스트는 북반구 깊은 지하에서 인간의 유해를 발굴하고, 그 세포로 인간의 몸을 만들어 자신의 의식을 연결한다. 인간의 몸으로 옮겨간 프로스트가 처음으로 내뱉는 말은 “두렵다”이다. 그는 짧은 시간 인간의 몸에 머문 뒤 다시 기계의 몸으로 돌아오며, 모든 것이 의미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솔컴과 디어컴, 모르델은 그가 두려움과 절망을 느낀다는 사실에서 그가 이미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를 강제로 인간의 몸으로 되돌린다.
인간이 된 프로스트는 통신 기능을 잃고 모르델을 통해 다른 기계들과 대화한다. 솔컴과 디어컴은 누가 통치권을 가져야 하는지를 묻고, 프로스트는 북반구와 남반구를 나누어 맡아 지구를 재건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베타에게 말한다. 자신에게 와서 인간이 되라고.
마지막에 인간이 된 프로스트가 베타에게 말을 걸 때, 시를 읊는다. 아래의 시이다.
저 멀리, 저녁과 아침
그리고 열두 방향의 바람이 오가는 하늘로부터
생명의 가닥이 날려와 엮여 나를 이루었다네.
그리하여 나는 이곳에 있네.
그러자 프로스트로부터 인간의 데이터를 모두 전송받았던 베타가 자신도 아는 시라고 말하며 다음 구절을 이어 말한다.
지금
내 숨결 한 번을 미루어 아직 흩어지지 않으니
서둘러 내 손을 붙들고 말해 주기를
그대 마음에 무엇을 품었는지
그러자 프로스트는 “당신의 극점은 춥고, 나는 외롭습니다.”라고 말하며 “제게는 손이 없습니다.”라는 베타에게 손을 가지고 싶다면 자신에게로 오라고 말한다.
이 시는 하우스만이라는 시인의 『슈롭셔의 젊은이』라는 시집의 시들 중 32번째 시이다.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시는 이렇게 끝난다.
지금 말하면 내가 대답하리니
그대를 도울 방법을 일러주기를
바람의 열두 방향으로 내 다시 끝없는 길을 떠나기 전에.
프로스트가 이 시를 인용한 이유는 분명하다. 베타에게 인간이 되자고, 함께 가자고 말하기 위해서이다. (너무나 인간다운 방식으로 이 말을 건넸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데에 있다.
기계였을 때의 프로스트에게 시간은 의미를 갖지 않았다. 이야기에서 나오는 시간 개념을 보면 그는 수 세기에 걸쳐 기계를 설계하거나, 도시를 만들거나 한다. 말하자면 인간이 되기 전의 프로스트는 소멸하지 않았기에 무한한 시간 속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된 후 그는 시간의 유한성을 인식한다. 자신이 곧 소멸할 존재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베타에게 이 짧은 시간 동안, 바로 “지금” 나와 함께 인간이 되지 않겠냐고 묻는 것이다. 이때에 베타는 이 세계에서 프로스트와 더불어 유일하게 인간이 될 수 있는 존재이다. 프로스트가 건네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인간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타는 프로스트가 건넨 “인간이 되러 오라”는 제안이 어떤 의미인지 다른 기계들보다 분명히 알고 있다.
둘의 대화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모르델은 처음에 인간다움의 기준으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차갑다"라는 감각의 의미가 기계에겐 계측을 통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지만, 인간에게는 생리적인 반응이자, 감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감정이 촉발되는 존재인데, 이 같은 감정은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프로스트는 처음에 이해하지 못한다.
이어서 모르델은 인간다움의 척도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지를 묻는다. 프로스트는 아름다운 환경에도 찾아가 보고, 그랜드 캐니언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지만 조금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모르델은 그런 프로스트를 보고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다음으로 모르델이 제시하는 인간이 가진 특징은 예술이다. 예술 작품을 보면서 감정을 느끼고, 또 만들면서 감정을 느끼는 것. 프로스트는 인간처럼 조형물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보지만 역시나 아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프로스트는 “미안하다”라고 말하기도 하면서, 인간의 책을 통해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즉, 모르델과 함께하는 인간성을 찾기 위한 여정은, 프로스트가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모르델은 프로스트에게 당신은 인간의 논리적 피조물이지만 인간의 예술은 비논리적이라고 말한다. 과거에 솔컴은 프로스트에게 인간은 논리를 창조했기에 논리보다 우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프로스트가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해 최후로 시도한 것은, 기계 몸을 버리고 인간의 몸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이는 기계의 강인함, 무한함을 포기하고, 유한하고 제한적인 인간의 몸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느끼는 존재감과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는 어쩌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감정을 가진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된 프로스트가 처음 느낀 감정은 두려움과 절망이다. 이는 우리가 삶과 죽음을 맞닥뜨릴 때 경험하는 감정과 일치한다. 너무나 많은 빛, 계측될 수 없는 수많은 데이터, 부정확한 감각. 출생의 혼란과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절망. 우리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두려움과 절망은 인간의 삶에 언제나 있다. 기계라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감정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스트는 결국 인간이 된다. 그리고 베타에게 말한다. “나는 외롭습니다.” 자신과 함께 인간이 되자고 말한다. 약하고, 유한해서 ‘지금’만 존재하지만, 감정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알고, 예술을 하고, 두려움과 절망, 외로움 아는 존재가 되자고.
끝없는 시간을 절대적인 긴 선으로 놓고 볼 때, 인간인 우리는 정말 찰나의 순간에 스치듯 살고 가는 존재들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감각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데이터를 모두 처리하지도 못할뿐더러, 부정확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촉발한 감정이라는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다. 이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가 유한하고 한계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갖고 있다. 현재와 현실에 구속되어 있는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대가이다.
프로스트가 베타에게 건네는 제안, 함께 인간으로 살아가자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감정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예술을 느끼고, 서로의 두려움과 절망, 외로움을 이해하고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몸과 신경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프로스트가 베타에게 인간이 되자고 말하는 것은, 나와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찰나의 순간 잠깐 인간으로 살지 않겠냐고 묻는 것과 같다. 비록 우리는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인간으로 살다 가지 않겠냐고 묻는 것과 같다.
의미는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기나긴 시간을 북반구에서 혼자 눈송이를 세며 지내오던 프로스트가, 기계일 때는 알지 못했던 외로움을 인간이 되고 나서 느끼게 된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어느 순간엔 사라질 나는 과연 지금 사라져도 될 만큼,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함께” 인간으로 살자는 말을 건네고 있는 걸까?
함께 사라질 수 있을 만큼,
지금, 이 순간 인간이어도 되겠는지.
당신은 그래도 되겠는지.
이 질문을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