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을 알아차리지 못한 대가
이 소설은 주인공 오기가 병원에서 깨어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의식불명 상태에서 마침내 깨어나게 된 것이다. 오기는 눈만 움직이고 깜빡일 수 있을 뿐, 전신마비에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기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는 사람이다.
의사의 말을 곱씹었다. ‘의지를 발휘’해야 한다는 말에 담긴 비관과 ‘조금 더’라는 말에 담긴 낙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기는 의지를 발휘하라는 말보다 ‘조금 더’라는 부사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은 조금 더 힘을 내면 괜찮아진다는 뜻 아닐까. 조금 더 힘을 내면 턱을 움직여 말할 수 있고, 제 발로 걸어서 검사실에 가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말할 것도 없이 오기는 ‘조금 더’의 세계에 의지했다. 오기는 무척이나 살고 싶었다.
오기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던 중에 차 사고를 당했다. 그는 아내를 포함하여, 지난 과거에 대해 회상한다. 아내에 대해, 어린 시절에 대해, 결혼 과정, 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당시에 오기는 아내의 그런 얕은 허영조차 사랑스럽게 여겼다. 아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알았고, 그것이 진심이라 믿었지만 대부분 해내지 못했다. 그 일로 깊이 상처받지 않았고 훌훌 털었다. 그리고 재빨리 다른 대상을 찾아 찬탄을 지속했다. 그로써 아내는 동경과 욕망을 구별하는 법을 서서히 익혀나가는 것 같았다. 언제라도 태도와 취향, 의지를 철회할 자세를 취하면서 자신이 버릴 것과 간직할 것들을 구분해나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변덕스럽고 주관 없어 보일 뿐인 그런 성격도 오기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오기가 회상하는 결혼 전의 아내의 모습.
보통 남자들이 여자에게서 찾는 이상적인 어머니상 같은 것을 오기는 원하지 않았다. 오기에게 어머니는 울적하고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하다가도 아버지에게는 주눅 들지 않고 비꼬는 태도를 취했다는 정도로 인상이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근사해 보일 때는 주로 그럴 때였다. 아버지에게 비아냥거릴 대, 엄마의 말에 아버지가 기어이 화를 내면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다며 아버지를 더욱 쪼잔하고 볼품없이 만들 때, 약이 올라 씩씩대는 아버지 앞에서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릴 때.
오기의 어머니는 오기가 열살일 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버지는 결혼하기 3년 전에 대장의 암이 퍼져 돌아가셨다. 오기는 부모의 죽음을 담담히 회상한다. 어떤 슬픔이나 애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내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회상하는 어머니의 살아 생전 모습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회상하는 결혼 후 아내의 모습과 다소 닮아 있다.
아내는 결혼 이듬해 제법 큰 출판사에 취업했으나 출판사 대표가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며 격분했다. 아내는 그간 사내에 떠돌던 성희롱 사례를 모았고, 대표의 무례를 폭로하는 문서를 사내 인트라넷에 게시하는 것으로 사직서 없이 8개월 만에 퇴사했다. 그 무렵 오기는 새로운 지도교수와 상의 끝에 박사 논문의 주제를 수정했고 강의 수를 줄였다.
원래는 기자가 꿈이었던 아내의 첫 취업과 퇴사.
아내는 결국 어떤 책도 출간하지 못했다. 원고를 완성하지도 못했다. 오기는 여섯 차례나 아내가 작성한 원고의 초고를 살펴봤다. 매번 이야기의 서두가 바뀌었다. 가장 흥미로운 건 세번째 원고였는데, 아내는 오기의 지적, 그러니까 논픽션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픽션 같다는 말을 무척 신중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이 바로 제 작업의 의도라고 반박했으나 오래 주장하지는 않았다. 오기의 지적에 답하듯 네번째 원고는 사실 기술에 충실하게 작성했다. 오기는 뉴스 보도 이상의 흥미가 없다고 얘기해줬다. 다섯번째 원고는 두 스타일을 결합하다 보니 익숙하고 뻔한 장르소설의 도입부와 유사해졌고, 여섯번째 원고는 인터뷰 형식으로 전혀 달라져서, 오기는 기어이 왜 그렇게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느냐는 핀잔을 늘어놓았다.
그 이후 아내는 어떤 원고도 오기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출판사와 계약한 날짜를 어겼고 결국 집필을 포기했다. 출판사에서 다른 책의 계약으로 바꿔보자고 했으나 아내는 계약금에 얼마간의 위약금을 덧붙여 송금하는 것으로 끝내 계약을 파기했다. 그 무렵 오기는 박사 논문을 완성했고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에 모교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오기가 박사 논문을 완성하고 교수가 되는 동안.
살아나고 있다는 기분. 오기는 진심으로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근래에 이런 활력은 처음이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뇌가 깨어났다. 뇌는 충격을 받아 무뎌지긴 했지만 서서히 회복되었다. 눈을 뜨고 감는 것 말고 어떤 기관도 오기의 의지를 반영하지 못했는데, 이젠 아니었다. 운동 신경이 회복된 왼팔을 움직일 수 있었다. 어쩌면 죽음의 경계에 다가갔던 순서대로 삶 쪽으로 더디게 되돌아오는 중인지도 몰랐다.
의사와의 심리 상담에서도 별 안정감을 찾지 못하던 오기에게 서서히 의지가 생겨났다. 왼팔 덕분에 자신에게 남은 것들을, 삶에 애착을 가질 만한 것들을 떠올렸다. 그런 것들 것 너무 많았다. 왼팔만으로도 그것들을 다 움켜쥘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오기는 왼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장모가 더 큰 소리로 울자 오기는 멀뚱히 천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의사소통을 위해 그저 눈만 깜빡이면 된다는 것, 여차하면 그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편할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랬다. 오기는 지쳐 있었다. 누구를 위로할 처지가 아니었다. 오기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었다. 장모는 그걸 알아야 했다. 장모가 자신을 보며 우는 걸 이해해왔지만 앞으로는 화가 날 것 같았다.
퇴원하여 장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오기. 장모는 병원에서처럼 딸의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이지도, 숨죽여 울지도 않는다. 큰 소리로 울고, 오기에게 말을 건네고 제 멋대로 답을 꾸며낸다.
정원은 엉망이었다. 8개월 만에 저리 망가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식물들은 죽거나 시든 채로 여전히 땅에 뿌리를 박고 서 있었다. 똑바로 서서 죽어 있는 식물들이 무서웠다. 중개인의 소개로 처음 집을 방문했을 대의 정원처럼 보였다. 치매에 걸린 노파와 기력 쇠한 노인이 그늘 아래서 오기 부부를 지켜보던 때의 정원처럼.
집에 오자 식물들이 모두 죽어 있는 정원. 정원은 아내가 정성들여 가꾸던 공간이었다.
아내가 왜 정원 가꾸는 일에 그토록 열심이었는지 오기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이전까지 정원을 사용하던 방식을 바꾼 시점 말이다.
그들은 파라솔을 두고 바비큐를 해 먹는 정도로만 정원을 사용했다. 커다란 테이블을 중앙에 두고 그릴 두 개를 나란히 두었다. 질 좋은 등심이나 채끝살, 소시지와 감자, 버섯 같은 것을 구웠다. 사람들을 불러 단출한 파티도 종종 열었다. 아내의 식구와 오기의 동창이 다녀갔다. 오기의 학교 동료들도 다녀갔다. 학교 동료들이 다녀간 후, 아내는 정원의 용도를 바꾸었다. 테이블을 팔아치우고 바비큐 그릴 등속을 창고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 나서 흙을 뒤엎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일이었는데도 오기는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정원에 대한 아내의 결심을 알아차렸다.
아내가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시점은 오기의 학교 동료들과 함께 했던 바베큐 파티 이후였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바베큐 파티에 대한 회상은 여러번 기억이 변주되며 반복된다.
굳이 둘뿐이라면 오기는 전자에 가까웠다.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점점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노골적으로 술수를 부렸고, 그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종종 이 삶이 너무 안온해서 어느 것도 바꾸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수중의 것은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았다. 뭔가를 성취하려고만 드는 아버지를 비난했지만 자신 역시 이미 비슷한 가치로 살아가고 있었다.
잠깐 언급되는 40대의 오기 자신에 대한 회상. 오기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40대가 '죄'에 어울린다고 생각을 한다.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실패하면 실패한대로 40대는 죄를 짓는다고 여기면서.
오기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지만, 아내가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여길까 봐 걱정했다. 아내는 하려던 일에서 지속적으로 좌절했고, 스스로의 재능에 성취감을 느낀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렇더라도 인생을 즐거운 것으로 여긴다면 좋은 일이지만, 아내는 어느 순간 달라졌다.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뭔가를 배우러 다니지도 않았고 누구처럼 되고 싶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지갑에 사진을 넣어가지고 다니거나 뭔가를 쓰고 싶다고 말하는 일도 없었다. 예전처럼 책도 많이 읽지 않았고 간혹 『킨포크』나 가드닝 잡지만 들여다보았다. 종종 거실에 나와 있을 때 아내는 여기가 어디지 하는 눈빛으로 집과 정원을 둘러보았다. 그 눈빛을 떠올려보면 삶의 허기를 메울 심산으로 식물에 빠져든 것은 아닌가 싶어졌다.
아예 다른 이유일 수도 있었다. 오기에게서 정원을 빼앗기 위해서인지도. 아내가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시점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었다. 아내는 오기가 정원에서 동료들과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떠들고 많이 웃고 다음번 모임을 기약하고 헤어진 이후 정원을 자신만의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아내는 오기가 정원에서 동료들과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떠들고 많이 웃고 다음번 모임을 기약하고 헤어진 이후 정원을 자신만의 것으로 바꾸어 버렸다.
다시 한번 정원과 바베큐 파티, 아내에 대한 회상이 맞물린다. 정원이 아내에게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른 시각이었는데 제이가 취해서 꾸벅꾸벅 졸았다. 엠과 케이의 얘기가 끝날 기미가 없어 오기는 제이를 부축해 거실로 데려갔다. 제이를 소파에 눕혀두고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 왔다, 며칠 전 백화점에서 엠의 취향에 맞춰 탄닌 향이 많이 나는 프랑스산 와인을 무리해서 여러 병 구입했다.
바베큐 파티를 했던 날의 기억이 조금씩 상세하게 그려진다.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내는 분개하며 사소한 일로 오기에게 대들었다. 오기는 달랬다. 아내가 생각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럴 때가 있었다. 꼬투리를 잡아 뭐든 최악의 일을 상상하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을 과장했다. 그럴 때의 아내는 몹시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다. 자신의 생각만 믿었고 그것을 진실로 확신했다. 오기의 말을 모두 부인했고 오기가 거짓말을 한다고 다그쳤고 자백할 때까지 몰아붙일 기세였다. 그렇게 한바탕 화를 내고 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과했다. 생각을 과장하는 버릇을 탓했고 되도록 좋은 생각만 하겠다고 약속했다.
오기는 아내가 자신을 오해하고, 의심하고 과장하여 밀어붙였다고 회상한다.
“여긴 모두 죽은 흙이야. 지렁이도 없는 흙이라니. 지렁이가 있어야 해. 그래야 뭐든 자랄 수 있어. 게다가 우리 집 흙에서는……”
아내가 정원을 가꾸기 직전에 흙을 전부 뒤집어 놓으며 하는 이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오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내가 열중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응원하고 싶었다. 재능은 있지만 계속해서 헛된 시도를 하고, 어떤 성취감도 얻지 못한 채 비아냥과 조롱만 늘어가는 아내가 애틋했다. 오기가 지난 시간을 제 영역을 확장하는 데 보냈다면 아내는 시간을 보낼수록 홀로 남겨졌다. 확실히 젊은 시절의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오기는 아내가 꽃말이라도 말해주려고 하면 특히 질색했다. 꽃말이라고 해봤자 신문에 난 오늘의 운세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아내는 지치지 않고 얘기했다. 아네모네의 꽃말이 사라져가는 욕망과 덧없는 사랑이라는 식의 얘기들. 오기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내가 참을 수 없이 유치해져간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오기의 회상 속에서 오기는 마치 아내를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그려진다.
식물이나 나무에 특별한 애정은 없어도 나무들이 중력을 거슬러 꼿꼿이 자라는 게 경이로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덩굴식물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울타리나 기둥을 감으며, 그런 게 없다면 감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빙빙 돌며 자라다가 물체와 닿는 순간 그것을 휘휘 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은 징그러웠다. 줄기에 빨판이 있고, 담이나 벽을 타고 기어오르며 벽면 전체를 덮을 정도로 강한 흡착력을 지닌 게 무서웠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듯 달라붙어서 기어이 파고들어 몸통을 불리는 게 지독해 보였다.
덩굴의 무언가에 의지해야만 생존하는 속성이나, 강한 생존력을 징그러워했던 오기.
오기가 전진하는 진실이 뭐냐고 되물었다면, 아내의 얘기를 들으려 했다면, 아내는 농담이든 진담이든 말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응시와 웅얼거리는 투는 오기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오기는 한숨을 내쉬었고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야”라고 대꾸한 후 그대로 자리를 떴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집필하는 것에 대해 오기에게 말하며 에밀 졸라의 말 '전진하는 진실'을 인용하자, 오기는 자세히 들어보려고 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피한다.
오기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었다. 무슨 일로 오기와 다퉜는지, 화해를 청하며 오기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하는 것을 적어두었다. 얼마 후에는 그 메모를 꺼내 들이밀었다. 오기에게 실망했다며 오기가 전과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따져 물었다. 다짐이나 약속이 아무 소용없다고 화를 냈다. 오기는 다시 사과하고 진심을 담아 비슷한 약속을 했다. 얼마 후에는 아내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비난받았다. 오기는 곧 질렸다.
아내는 언젠가부터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서재에 많은 것들을 메모했고, 오기에 관한 것들도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집에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아 서재에 들어간 장모는 그것들을 다 보게 된다.
아내는 매사 빈정대고 조롱했다. 오기에게 속물이라고 했다. 툭하면 오기를 탓했다. 오기는 억울했다. 자신은 그저 열심히 살고 있었다. 여러 가지 경력을 쌓았고, 그러느라 일을 늘렸다. 아내는 좀처럼 몰라줬다. 서운했다. 오기는 스스로 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 삶에서 아내를 분리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 아내도 마땅히 그래야만 했다. 오기를 분리해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스스로 제 삶을 꾸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내에 대한 회상이 점차 자세해져 간다. 사고가 있기 전 오기와 아내의 관계는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기는 아내와의 관계와 상관 없이, 늘 그래왔듯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있었다.
휠체어라도 밀게 되면 오기는 당장 강의를 나갈 생각이었다. 안면 수술을 하고 부서진 턱이 재생될 때까지 기다려야겠지만, 왼손만으로도 휠체어 바퀴를 밀 수 있을 것이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놀고 있는 마당에, 오기는 움직일 수 없어 누워만 있는 처지에서도 돌아갈 직장이 있었다. 학교는 오기에게 정년을 보장했다. 오기는 재활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 정년을 채울 것이다.
오기는 아직 왼손밖에 못 움직이고, 입모양만 웅얼거리는 게 전부이지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 교수로서 살아갈 희망을 갖고 있다.
장모가 오기가 있는 방 쪽을 힐끔 쳐다보고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일에 몰두했다. 오기가 병원에서 의식을 차렸을 무렵의 장모는 여지 없이 상견례 자리에서 만났을 때의 장모였다. 고상하고 분별력이 있었다. 요즈음의 장모는 마포 아파트에 갔을 때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밖에서 떠드는 아이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별안간 소리를 질러대던 장모 말이다.
상주하던 간병인이 자신의 아들을 집에 들이고, 집에 있던 귀금속을 훔치고, 술을 마시는 등 말썽을 피우자, 간병인을 내쫓고 자신이 간병을 자처한 장모. 하지만 오기의 간병은 소홀히 하고 정원일에 더 몰두한다. 의사가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말하자 두려워하는 표정을 보이고, 집에선 오줌통을 제 때 갈아주지 않거나 오기의 식사를 거르는 등 제대로 간병을 하지 않는다.
다스케테쿠다사이.
오기 옆에서 간병을 할 때 장모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 장모는 중학생 때까진 일본에 자란 사람이다. 오기는 이 말을 외운다.
오기에게 남은 가족은 장모가 유일했다. 이제야 장모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와 장모는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물론 아내가 있었다면 언제든 가족이 아닌 관계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뻔했다. 이제는 아니었다. 오기와 장모는 그럴 기회를 잃었다. 영영 가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집에는 오기와 장모만 남았다. 앞으로 오랫동안 그럴 것이었다. 장모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오기에게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아내가 안다고 믿었던 걸 모두 알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오기가, 도대체 아내가 알고 있던 게 뭔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장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오기. 장모는 서재에서 밤을 보내고 나온 이후부터, 돈에 대한 얘기를 하며 간병인을 쓰지 않겠다고 하는 것을 시작으로 오기에 대한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오기는 장모 몰래 내연녀에게 전화를 걸지만, 소리를 낼 수 없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끊어진다. 다음날 전화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장모가 재발신을 눌러 전화를 걸어보게 된다. 이후에 장모는 어떤 이유인지 오기의 학교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그들 앞에서 불륜을 암시하는 농담을 하거나, 그들 앞에서 오기가 소변을 보는 것을 보여주는 등 모욕을 준다.
아내가 바라는 게 그것이었을까. 그저 오로지 오기를 화나게 할 목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하기 시작한 걸까.
차 사고가 났을 때에 차 안에서 아내는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아내는 상상한 것을 보았다. 혹은 미래를 보았다. 아내가 목격했다고 주장한 일은 그날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난 건 그날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아내는 바베큐 파티 날 무언가를 보았다. 학교 동료 제이와 오기 사이에 미묘한 기류를 감지했고 그 날 바로 둘의 사이를 의심했으며 오기에게 항의하고 분노했다. 하지만 항의한 그 날에는 오기의 주장이 맞았고, 미래에는 아내의 주장이 결국 맞았다.
오기는 거듭 말해왔다. 그날 있었던 일, 오기가 한 일, 제이가 한 일을 기억나는 대로 말했다.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허울 좋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하지 않은 일은 분명했지만 세부적인 것이나 순서에 있어서 오기의 기억은 말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제 기억도 그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기는 힘들고 지쳤지만 제이 없이도 삶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걸 금세 받아들였다. 사랑을 잃어도 세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이와 함께한 부분이 사라지면서 공동이 생겼는데도 그랬다. 그 공동은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오기의 세상은 그럭저럭 굴러가리라.
학생과 관계를 가진 사실이 들통나서 제이와 이별하게 되었던 것. 제이를 잃고 그는 처음으로 구멍을 느낀다.
아내는 왜 제이와 오기를 오해한 것일까. 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보았다고 믿은 걸까. 그 무렵 아내도 인생에 생겨버린 커다란 공동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자기가 애써 유지해온 삶이 헛것임을 알게 된 걸까. 그 공동을 메워보려고, 가짜라는 느낌에 시달리느라, 홀로 정원을 일구고, 서재에 틀어박혀 뭔가를 쓰고 완성하는 일에 실패하고 그럼에도 헛되이 계속 써왔던 것일까.
아내에 대해 회상하면서 오기는 삶의 구멍에 대해 생각한다.
만약 제이가 아내를 도운 거라면 그 둘의 공모에 배후가 있을지 모른다는 허튼 의심도 들었다. 어쩌면 케이가 그 둘을 부추긴 건 아닐까. 임용 당시 오기가 케이의 약점을 이용해 술수를 부린 것처럼 케이도 그런 게 아닐가. 오기는 케이가 저지른 몇 가지 잘못을 알고 있었다. 오기는 자신이 아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정리해 엠에게 얘기하고 말많은 에스에게 넌지시 흘렸다. 비열했지만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은 아니었다. 오기가 유리한 입장인데도 그랬다. 간혹 자신의 성공만으로 성에 차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가까운 누군가의 실패가 더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아내와 제이를 의심하는 과정에서 오기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 시야를 가로막은 커다란 앞차가 구멍처럼 보였다. 호흡하기 힘들어졌고 가슴의 압박감이 심해졌다. 어지럽고 탈진할 것처럼 의식이 흐려졌다. 오기는 삶에 애착이 심했지만, 그 순간의 무력감 역시 오기의 것이었다. 아내가 핸들을 잡고 있는 오기의 팔을 거세게 움켜잡았다. 오기는 깜짝 놀랐고 아내의 팔을 힘껏 뿌리쳤다.
사고가 나던 순간, 아내의 얘기들을 듣고 오기가 느꼈던 감정.
정원은 너른 나대지처럼 보였다. 대문 옆 낮은 철책 앞에 촘촘히 들어선 나무들을 제외하면 자라고 있는 것, 잎을 피운 것, 꽃이 핀 것,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심겨 있던 관목들은 뿌리가 뽑혀 한곳에 장작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정원에는 작고 둥근 어둠이 곳곳에 고여 있었는데, 모두 구덩이였다. 뭔가를 새로 심으려고 파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식물을 뿌리째 뽑아내느라 생긴 구멍 같았다.
왼손의 힘으로 안간애를 써서 집에서 빠져나온 오기가 보게 된 정원의 풍경. 아내가 가꾸던 정원은 모두 구덩이로 변해 있었다.
우는 아내를 보며 오기는 웃었다. 이게 슬픈가. 겨우 이런 얘기로 우네. 아내가 이렇게 감상적이었나.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달래고 싶었다. 우리는 무사할 테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저 너머로 홀로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허튼 약속 없이, 섣부른 이해 없이 아내를 슬픔에서 천천히 건너오게 하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나중에야 들었다. 오기는 미래의 슬픔을 이미 겪은 듯한 아내를 가만히 안아주었고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다가 그쳐가는 걸 지켜봤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
오기는 아직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던 어느날의 아내의 울음을 회상한다.
편혜영 작가의 『홀』의 마지막을 읽고, 다시 책을 한번 더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위의 마지막 장면, 오기의 회상 속에서 아내는 어떤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한 남자가 죽을 뻔한 상황을 겪고 나서는 자취를 감췄는데, 아내가 탐정을 통해 찾고보니 다른 도시에서 이름과 직장을 바꾸고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 아내는 그 이야기를 하며 운다. 오기는 아내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아내를 보며 웃었고, 그냥 아내를 안아주었다.
아내는 이미 알고 있다. 오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것, 자신의 삶에 있는 공동(hole)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까지. 그래서 운 것이었다. 희망이 꺾여서라기보다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또렷이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오기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쪽으로 한 발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그는 무능해서가 아니라 선택적으로 무감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는 아내를 달래지 못한 게 아니라, 달래야 할 필요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결말에서 오기는 장모가 파놓은 커다란 구덩이에 떨어진다. 그 구덩이에서 아내를 회상하고, 마침내 우는 것이다. 이 구덩이는 그래서 잔인하게 정확한 장소이다.
그곳에서 오기가 우는 건, 단순한 후회라기보다 인지의 붕괴에 가깝다. 그는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놓친 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알아보는 능력 자체였다는 걸. 아내의 울음은 도움 요청이 아니라 경고였고, 마지막 기회였고, 이미 너무 늦은 신호였다는 걸.
구덩이 속에서 오기가 마침내 우는 까닭은 울어서 무언가를 회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구원을 주지 않는다. 오기의 깨달음은 성장이 아니라 지연된 인식이고, 인식은 왔지만 행동할 시간은 이미 사라졌다. 이 소설이 주는 공포는 살인이나 폭력이 아니라, 알아차리는 순간이 너무 늦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오기는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서 울지만, 그 울음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다만 독자에게 남긴다. 나는 '아내의 울음'을 놓치고 살아오고 있진 않은가, 하는 질문을 말이다.
이 소설이 무섭게 잘 만들어진 이야기인 까닭은 거기에 있다. 작가는 독자를 가해자도, 피해지도 아닌 지연된 목격자의 자리에 세운다. 이미 지나간 장면을 나중에야 이해하도록 만들어 놓고, '나도 오기와 같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만든다. 이는 '큰 악'을 다루진 않는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것들을 다룬다.
알아보지 않음, 묻지 않음, 달래지 않음, 그리고 괜찮다고 믿어버림.
사회적으로는 무난한 태도들이고 잔인하지 않지만, 오기가 한 결정적인 잘못은 바로 "사유를 미룬 것"이다. 감정의 원인을 캐묻는 일,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일을 미뤘다. "왜 울지?"라는 질문을 그 순간에 하지 않고 계속 다음으로 넘긴 사람이었다. 이 소설은 묻는다.
우리는 그 미루는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신호를 합리화하며 지나쳐왔는가.
아내는 처음부터 비어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였다. 감각이 있고, 오기의 대답을 기다리고, 사실과 감정을 확인하려 하고, 울 수도 있었던 사람. 그런데 오기는 그녀를 점점 기능 없는 공간처럼 대한다. 채워야 할 대상도, 응답해야 할 타자도 아니라, 그냥 지나쳐도 되는 자리. 마치 현실에 있지만 의미로는 처리되지 않는 공간처럼. 그래서 오기에게 아내는 '홀' 그 자체이다. 있는데도 의미화되지 않는 존재. 오기의 삶 안에 있었지만, 그는 그녀를 '사람'으로 읽지 않았기에 그 결과 그녀는 점점 구멍이 된 것이다.
더 잔인한 것은 아내의 내면에 생긴 구멍은 오기 때문에 생겼지만, 오기가 끝내 보지 못한 구멍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이미 자기 안에서 붕괴를 겪고 있었는데, 오기는 그걸 관계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다.
결말에서 오기는 구멍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자신이 사람에게 만들어왔던 위치를 자기 몸으로 직접 경험한다.
나는 이 소설에서 아내가 자기 안의 공동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일이 정원 가꾸기였던 점이 굉장히 상징적인 것 같다. 흙은 이 소설 속에서 특별한 상징을 가지고 있다. 아내가 자기 안의 구멍을 메꾸고 식물들을 키우기 위해 선택한 것도 흙이지만, 결국 구덩이들이 자리한 곳도 바로 흙이었다.
아내는 자기 안의 공동을 어떻게든 상대해보기 위해 정원 가꾸기를 선택했다. 마음 내부에 생긴 홀은 추상적으로 붙들 수가 없으니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흙으로 옮겨간 것. 흙은 무겁고, 냄새가 나고, 손톱 사이에 끼지만, 상대해주면 반드시 반응하는 대상이었다. 기다리면 변하고, 돌보면 자란다는 점에서, 아내가 오기에게서 끝내 얻지 못한 유일한 '반응'이 흙에게선 있었다. 그래서 아내는 흙에 대해 얘기할 때 생명력을 얘기한다. 지렁이가 없는 흙은 죽은 흙이라는 말에서 흙이 가진 이같은 속성이 잘 드러난다.
반면에 오기가 흙을 싫어하고, 아내의 흙에 대한 얘기를 기분 나빠하는 것에서 그가 흙에서 느끼는 감각이 드러난다. 오기는 자기 통제 바깥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불편해한다. 흙은 계획대로 굴러가지 않고, 결과도 즉각적이지 않다. 오기가 불안해하는 조건들이다. 그래서 오기는 흙에서 자라는 정원의 식물들에게 무신경하고, 특히 덩굴처럼 통제 불가능한 생명력 앞에서는 공포를 느낀다.
덩굴은 흥미로운 상징이다. 오기가 그토록 중요시하는 가치관 중 하나가 자기 스스로 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인데, 덩굴은 제 스스로 살지 않는데도 너무 잘 산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생명력은 오기가 처리할 수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의존과 생명력은 사고 이후 오기의 상태와 겹친다. 오기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면서도 강력하게 살고자하는 욕구를 지닌 상태가 된다.
아내에게 흙과 생명력은 자기 안의 공동을 메우기 위한 대상이었지만, 오기는 그 흙과 생명력을 거부함으로써 그 안에 생긴 구멍에 자기 자신이 빠져버린다. 그래서 마지막에 흙은 아내의 도구가 아니라, 오기 자신의 위치가 된다.
중요한 건, 흙은 이 때도 여전히 중립적이라는 것이다. 벌을 주지도, 구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오기를 포함해서, 살아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리일 뿐이다.
자연은 악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끝내 상대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 속으로, 자기 자신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가장 무서웠던 지점은, 아내도 오기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내로서의 삶도, 오기가 어떤 인간인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
아내의 삶은 참고, 기다리고, 의미를 만들어보려고 애쓰고, 관계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흙을 고르고 씨를 심는다. 오기는 그걸 "취미"라고 바라봤지만, 실제로는 아내는 자기 붕괴를 지연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오기가 악인인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무심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미루고, 삶을 관리 가능한 단위로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동시에 움켜쥘 수 있는 것은 다 쥐고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
이 소설은 아내나 오기,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는다. 대신 아주 냉정하게 보여준다. 홀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는지에 대해.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더는 누군가의 '울음'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다. 그 뒤에 뒤따를 홀을 떠올리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