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그녀들의 이야기 2
아이가 아픕니다. 태어날 때부터 많이 아팠고 언제 응급실로 달려가야 할지 몰라 늘 마음을 졸입니다. 긴장과 초조함 속에서 온전치 않은 아이를 안고 살아야 하는 엄마 마음은 어떨까요? 재희 씨는 글쓰기 모임에 들어올 때 이제껏 못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녀의 딸은 소화기능에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났습니다. 소화기관에 신경절이 없어 음식물을 전혀 소화시키지 못하는 극희귀난치질환. 입으로 들어간 음식이 위에서 소장, 대장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가야 하는데 아이에겐 그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배설물이 몸에 쌓이고 계속 구토를 하고 염증을 일으켜 결국 장기가 썩게 되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1년 넘게 입원 생활을 했고 집에서도 링거를 달고 삽니다. 장루(인공항문)를 몸 밖에 내서 언제 어디서든 코알라처럼 등에 주머니를 달고 다닙니다. 성장기에 맞춰 아이 입에 이유식을 넣어주고 반찬 걱정을 해 보는 게 그녀의 소원입니다.
"아이가 완치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녀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미친 사람처럼 오열하기도 하고, 한동안 깊은 우울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했어요. 정신 차리고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이내 마음이 무너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게 생존을 위한 기본 요소인데 내 아이에겐 이마저 허락되지 않았으니 왜 억울하지 않았겠어요.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속엔 아이가 아픈 게 자신의 탓이라는 자책감이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녀가 힘든 마음을 내비칠 때마다 남편과 다른 가족은 아니라고 화를 냈죠. 하지만 어미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자책하고 후회하고 끊임없이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내다 끝내 내 몸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어요."
그녀가 글쓰기 모임을 찾은 건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휴직했을 때였습니다. 잦은 입원과 통원치료를 감당해야 했기에 그녀는 생계를 위한 다른 대안을 고민 중이었습니다. 블로그 활동을 시작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구요. 학창 시절 국어시간을 가장 싫어했던 그녀에겐 컴퓨터 하얀 화면은 공포 그 자체. '글을 좀 쉽게, 빨리 쓰고 싶다', '글 쓰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라는 바람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면 내 이야기부터 출발합니다. 세상에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 나만 알고 있는 유일하고 특별한 소재는 바로 나 자신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써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아픈 아이와 반복되는 일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미세한 감정으로 하얀 화면을 까맣게 채웠습니다. 고통스러운 상처를 글로 쓴다는 건 쉽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인다는 건 더더욱. 하지만 그녀는 매일 하나씩 몸 구석구석 박혀 있는 총알을 빼내듯 그렇게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서로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던 이들이 모였다는 게 그녀를 자유롭게 했죠. 우리는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녀의 넋두리를, 때로는 몰아치듯 쏟아내는 그녀의 마음을 가만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당시 글쓰기 모임에선 자신의 쓴 글 중 하나를 골라 낭독했어요. "선생님이 대신 읽어주셨으면 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주제였죠. 이미 읽고 피드백을 드린 글이라 전 내용을 다 알고 있었어요. 글의 말미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녀의 바람이 적혔어요. "천사 같은 내 딸, 네가 어느 날 거짓말처럼 괜찮아져서 엄마 좀 살려주라." 더는 소리 내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간신히 삼키고 고개를 들어 보니 다른 멤버들의 눈은 이미 벌겋게 부풀어 올랐더군요. 30대, 40대, 50대. 각자 인생을 다른 시간으로 살아온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한동안 그렇게 울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스킬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 강의를 하고 모임을 이끌며 느끼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잘 쓴 글은 진실된 글이라는 거예요.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담담히 써 내려진 글이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전 믿습니다. 그렇게 쓰인 글은 자신을 치유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까지 위로하니까요.
"글 잘 쓰는 방법이나 배워볼까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제 마음이 한결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암울하고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현실도 글로 써서 읽어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라구요. 답답하고 억눌린 게 해소되지 않았는데 진짜 무슨 짓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던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어요. 글쓰기 모임은 제게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달라진 걸 느껴요, 선생님."
이후로 그녀는 스마트 스토어를 시작했고 블로그 글쓰기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표정이 한결 밝아진 건 말할 것도 없구요. 무엇보다 그녀의 변화에 남편이 웃습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 모든 출발은 나로부터 시작되죠.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정리하고 앞으로 갈 길을 꿈꿉니다. 나만 유난히 불행할 수 있지만 미래까지 불행을 이어가는 건 내 선택이에요. 그녀는 글을 쓰며 과거에 묶였던 고리를 조금씩, 단호하게 끊어갔습니다.
글쓰기가 사람을 세우고 삶을 나누고 생명을 살린다는 믿음으로 시작한 글쓰기 모임. 그 믿음이 옳았다는 걸 그녀를 보며 더 깊이 깨닫습니다. 글쓰기로 묶어진 우리는 어느새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됐구요. 친한 친구와 수다 떨러 가는 것처럼 글쓰기 모임에 참여할 때마다 신나고 설렙니다. 내 글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이들이 있다는 건 쓰는 일에 용기를 내게 하니까요.
그녀와 함께 했던 글쓰기 모임, <라라프로젝트2.0>을 오픈합니다.
마음을 나누고 함께 글을 쓸 여러분을 기다려요:)
기자가 알려주는 글쓰기 <라라프로젝트2.0> 강의 모임 피드백까지_9월 입문과정을 모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