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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ct 29. 2022

작가처럼 쓰고 싶은 마음

잘 쓴 글을 읽으면서 감탄합니다. '오, 나도 이런 적 있는데. 어쩜 이리 표현했을까. 정말 잘 썼다.' 작가의 깊은 성찰과 반짝이는 위트와 유려한 필력에 빠져 한참을 바라봅니다. 그러다 고개를 들면 불현듯 마음이 서늘하고 무거워집니다. '나도 겪은 일상이구만. 별 것도 아닌 걸 왜 이리 잘 썼지. 우씨, 난 뭐야.' 글 하나 쓰기도 벅찬데, 애써 머리카락 쥐어뜯어가며 쓴 내 글은 영 못나 보입니다. 언제쯤 이렇게 잘 쓰게 될 수 있을지, 점점 자신 없어집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남의 글도 잘 읽어내야 합니다. 양질의 아웃풋을 위해 그에 상응하는 인풋을 해야 하죠.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읽게 되는 남의 글이 쓰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자꾸 내 글이 비교되거든요. “얼마 전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마음은 무거워졌어요." 그녀는 담백하게 잘 쓴 에세이를 읽은 후로 글 쓸 때마다 너무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쓰는 이 주제로 그 작가가 글을 쓰면 이보다 잘 쓰겠지?’ 공감하고 감동했던 타인의 문장들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와 내 글쓰기에 발목을 잡았다고요. 정말이지 그녀는 한 달간 글쓰기에 고전했습니다. 글이 산과 바다를 오갔습니다. 자기 자신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헷갈렸다고 했어요. 어느 날은 글이 A4 절반을 채우지 못합니다. 멋진 문장에 욕심을 내다보니 더 이상 생각이 뻗어가지 못했던 거죠. 잔뜩 힘이 들어간 문장들은  저마다 개성을 자랑하며 각자 따로 놉니다.


글을 처음 쓸 땐 하얀 여백을 채워가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형체 없던 생각, 공기 중에 휘발되던 말이 문자로 또박또박 각인되어 남는 걸 보면 경이롭기까지 해요. 글쓰기가 조금 된다 싶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내 글에 대한 욕심도 커집니다. 어디서 본 문장, 감탄하며 읽었던 글이 머릿속에 떠다닙니다. 그동안 읽었던 글 때문에 내 글에 대한 기대치도 점점 높아집니다. 금방 기성 작가처럼 글이 나올 것 같아 마음이 두리둥실 떠오릅니다. 하지만 발을 땅에 붙이고 눈을 돌려 바라보니 내 글은 한없이 초라합니다.


글쓰기가 어느 순간 너무 힘들고 답답한 건, 나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누군지는 잊고 유명 작가를 떠올리는 거죠. 내 생각대로, 느낀 대로, 경험한 대로 쓰면 되는데 그 이상 열심히 장식하고 포장해서 000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어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초과해 멋진 글을 쓰려고 하니 어렵습니다. 들 수 있는 덤벨의 무게는 고작 1킬로그램인데 한 번에 10킬로그램을 들려고 하니 그게 쉬이 들리나요. 자칫 잘못하다 발등을 찍기 쉽습니다.


글 쓰는 사람의 자존심이 고개를 들면 문장이 현란해집니다. 마치 공갈빵처럼 안에 들은 것 없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듯, 길고도 복잡한 문장을 써내기도 하죠. 자신의 악취를 가리기 위해 강한 향수를 뿌리듯, 못난 얼굴을 숨기기 위해 짙은 메이크업을 하듯. 한승원 작가는 "진실되지 못한 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현란한 수사로 치장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고운 헝겊을 누덕누덕 기워 만든 보자기로 오물을 싸 놓은 것처럼 흉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실체 없이 두루뭉술, 애매모호한데 표현만 그럴듯한 글은 결코 독자에게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전까지 글 쓰는 게 참 힘들었어요. 글이 안 써진다고 투덜투덜, 징징거렸답니다. 글쓰기 강의를 듣고 내 글 피드백을 받고 보니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했어요. 동네 선수도 안 되는 수준인데 나 자신이 국가대표인 줄 착각하고 마치 슬럼프에 빠진 것처럼 말했던 거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독서량도 많았던 그는 유난히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습니다. 글 한 번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이 글쓰기를 평생 숙제로 만들었죠. 그는 비로소 자신이 이제 글쓰기 첫발을 뗀 초보라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걸음마 아이가 당장 단거리 선수처럼 100미터 기록을 낼 수 없다는 걸, 다리 근육을 키우는 일이 먼저라는 걸 알아차린 거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글쓰기는 어떠한 속임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문장은 기나긴 수련의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특정 작가의 글이 질투 날 정도로 좋은 건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마 공개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글을 쓰고 또 썼기 때문입니다. 빙산의 일각이 수면에 떠오르기 위해서 육중한 빙체가 물 아래 떠받히고 있듯, 답답한 습작을 꾸역꾸역 쓰던 날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낸 겁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무던히 써야 합니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일 외에는 적어도 제가 아는 한 지름길은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심히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것 이상 쓸 도리가 없습니다. 살아낸 것을 부지런히 기록하다 보면 우리도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줄 글을 쓰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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