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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ct 19. 2022

당신에게도 낯선 독자가 있나요

그녀는 '글가림' 중

“처음 뵙겠습니다.” 

그녀가 수줍게 인사합니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터라 익숙할 법한테 오늘은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습니다. 아,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했군요. 그녀의 말수가 줄어듭니다. 


우린 매주 목요일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만납니다. 각자 글을 1편씩 쓰고 모임 전, 다른 글벗들의 글을 읽어 옵니다. 호의적인 독자가 돼서 서로 글을 피드백해 줍니다. 요즘처럼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 내 글을 나보다 꼼꼼히 읽고 정성껏 의견을 나눠줍니다. 날카롭게 들이대는 합평 모임과는 다릅니다. 이런 글벗, 드물죠.


그녀와는 1년 넘게 글을 썼습니다. 타국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일상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글이라는 걸 써보지 않았기에, 처음엔 글쓰기가 그저 낯설고 버거웠습니다. 명치끝에 무언가 걸린 듯, 꽉 막혀 아무것도 나올 수 없을 것 같을 때마다 전 그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녀의 글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어요. 사소하지만 특별한 일상, 그 속에서 생각하고 느낀 모든 일이 머리에서 어깨를 타고 손가락으로 내려오면 그녀의 글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렀습니다.


그리고 만난 글쓰기 모임 멤버들은 그녀에게 따뜻한 글벗이 됐지요. 모두 글 쓸 때 어려움을 알기에 열린 마음으로 글을 대했고, 지혜로운 조언을 더했습니다. 덕분에 낯가림을 하던 그녀도 매주 자신의 일상을 글로 쓰고 기꺼이 내보였어요. 발행하는 글마다 수천 클릭을 부르는 인기 브런치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글쓰기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그녀는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경직되곤 했어요. 알고 지낸 사람이 곁에 있어도 낯선 사람의 등장은 그녀의 표정과 함께 글마저 굳게 만들었죠. 지난주까지 분명 술술 글을 뽑아냈었는데 갑자기 글에 철커덕, 자물쇠가 채워진 듯, 그녀는 작고 네모난 상자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 말하지 않은 것들이 꽁꽁 숨어 있었어요. 들킬까 봐 조심스러워하는 그녀의 마음도 함께요.


이상하네, 무슨 일이 있었나. 유난히 이번 주제가 어려웠을까. 여러 생각이 오가는 사이, 그녀가 입을 엽니다. “제 글이 오늘 좀 이상하죠. 제가 낯가림을 하는데요. 글가림도 해요.” 글가림이라. 이렇게 절묘한 표현이 있을 수가 있나요. 누구나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입이 굳는 경험을 해 본 적 있을 거예요. 그처럼 그녀는 낯선 독자 앞에서 ‘글가림’ 중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새로운 사람들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한 번, 두 번 만나고 나면 그녀의 얼굴은 발그레해졌고, 글에 차마 녹이지 못한 뒷이야기도 서슴없이 들려줬습니다. 낯선 이들도 호의적인 독자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녀가 깨달은 거죠. 그럴 때마다 우린 숨겨진 이야기가 멋지게 드러나도록 독자로서 의견을 건넸어요. 그다음 주면 그녀의 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 있게 날개를 달고 거침없이 날았습니다.


우린 ‘잠재 독자’를 생각하고 글을 씁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작가와 독자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독자가 내 글을 보고 웃기도 하지만 썩소를 날리기도 합니다. 아예 무관심으로 일갈할 때도 있습니다. 예상치 않은 반응이 작가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죠.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글을 쓰면서 즐거우면 그것을 똑같이 즐겁게 읽어주는 독자가 어딘가 있을 것이다. 그 수는 별로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지 않은가. 그 사람들과 멋지게, 깊숙이 서로 마음이 통했다면 그걸로 일단을 충분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다 내 마음 같지 않아요. 알 수도 없는 독자를 다 헤아려 그들 모두가 좋아할 글을 쓰고 싶겠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내 글을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우리의 글은 존재합니다. 그, 또는 그녀와 마음을 나누는 거죠. 진솔하게 정성껏 쓴 글은 마음결이 맞는 이들에게 서서히 가닿습니다. 


내 글을 기다리는 그들을 생각해 보세요. 우린 그저 그들에게 애정 어린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면 됩니다. 그렇게 하나, 둘, 내 애독자를 만들어가는 거지요. 누가 아나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커다란 폭풍을 일으키듯, 여러분의 글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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