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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ct 02. 2022

너무 바빠서 글 쓸 수 없는 당신!

글도 당신 곁에 오지 않아요

글쓰기를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글쓰기의 최종 목표를 '책 출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언가 배우고 익힐 때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시작하는 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죠. 물론 과정 자체를 즐기는 기쁨이 크기도 하지만요. 특히 책 출간이 '자기 계발의 꽃'이라고 여겨지면서 이런 현상은 두드러지는 듯해요.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일상에서 쓴 글을 모아 에세이집을 만들거나,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회고록, 자서전을 남기기도 하고요.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에세이로 풀기도 하죠. '업(業)세이'라고 불리는 이런 글이 요즘 인기가 많습니다. 본인의 관심사나 경력의 전문성을 높여 '정보서'를 출간하기도 합니다.


'작가' 타이틀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직업으로서 작가가 되는 게 목적이기도 하지만 책을 발판 삼아 '플러스알파'를  꿈꾸기도 합니다. 책을 낸 후 강의를 하거나 사업을 확장하고 유명세를 더하는 분들도 있어요. N잡러로 가는 길에 내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 큰 힘이 되는 걸 자주 목격합니다. 


저를 찾아온 철진 님도 그러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날개를 달고 싶어 했어요. 그는 오랜 직장 경력을 바탕으로 퇴사 후 1인 기업가로 온, 오프라인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강의안을 날 것으로 두지 않고 책으로 묶으면 강의 섭외도 늘 것이고, 인세라는 부가수입도 얻을 수 있다는 계획이었어요. 자신의 몸값이 높아지는 건 물론, 사업 확장도 가능할 테고요. 그는 책을 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콘셉트도 분명했어요. 바쁜 일정을 쪼개 초고를 완성하고자 제게 일대일 코칭을 의뢰했죠.


그는 목차를 만들어 이미 출판사와 계약까지 한 터였습니다. 이 정도면 책을 내는데 매우 호의적인 상황입니다. 많은 이들이 초고를 열심히 써서 수백 군데의 출판사에 투고를 합니다. 그 가운데 연락이 오는 곳은 정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예 가타부타 답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죠. 그는 자신이 강의하는 분야에서 어느 정도 전문성을 인정받은 터라 사실 초고를 쓰기만 하면 책을 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바빴어요. 그의 일정을 고려해 초고 작성 날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고 그에 맞춰 제가 피드백을 드리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약속한 날마다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어렵사리 마무리해서 보낸 글은 완성도가 심히 떨어졌어요. 아무리 출판사에서 출간을 확답받았다고 해도 이런 상태로 책이 나오긴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코칭 제안서에 제시된 대로 초고 진도를 나가는 일도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급기야 출판사에선 그의 글 몇 편을 보더니 문제를 제기했어요. "아, 강의안을 대충 묶어서 정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글쓰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글을 쓰기만 하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책의 분량이 나올 만큼 끄적거리면 출판사에서 다 알아서 해 준다고 믿는 이들도요.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글은 내가 쓰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글자를 늘어놓는다고 그게 다 책 원고가 되지 않아요. 어느 순간 마법처럼 글자 덩어리가 환생해 그럴듯한 책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글쓰기는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쉽게 뚝딱 해내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그러기까진 분명 습작을 위해 읽고 쓴 시간이 존재합니다. 세상에 책은 무척 많습니다. 그 가운데 내 이름으로 된 책 하나 더 얹을 수 있지만 어떤 책을 만드느냐는 분명 산고에 비견할 만한 애씀과 고통이 수반됩니다. 디테일이 명품을 만들죠. 


단지 내 이름으로 된 책이 필요한가요? 그렇다면 쉽게 가는 길이 있습니다. 쓰는 일이 고되니 다른 이에게 부탁하는 거죠. 실제 이런 일을 해주는 '대필 작가'도 존재합니다. 내가 가진 전문지식과 사례를 정리해서 주면 '말이 되게' 글을 대신 써 준답니다. 실제 이런 방법으로 책 쓰기를 시도했다가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표현된 글에 실망해 책 내는 일을 포기한 분도 여럿 봤습니다. 책 출간이라는 목표를 위해 지름길을 택했지만 내 글이 내 것이 아닌 생경함에 놀란 거죠.


글은 자신을 나타내는 도구여서 누군가 100% 나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글로 풀어내려 애쓸 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이 나옵니다. 글 쓰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글 쓰는 동안 내 생각을 정리해 세상에서 유일한 나만의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내가 직접 써야 합니다. 


글쓰기는 쉽습니다. 말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하면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정리되어 있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마음이 있다면 글쓰기를 위한 출발은 순조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어렵습니다. 의기충천해도 실제 시간을 내서 에너지를 들이는 게 만만치 않고, 그걸 책 한 권의 원고가 완성될 만큼 장기간 유지하긴 더 어렵습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낭비다 싶을 정도로 시간을 들이고 더는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를 들이면 됩니다. 이런, 그렇게 어려운 거라면 나는 못하겠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싶으신가요? 하루아침에, 몇 날 며칠 사이 도깨비방망이 휘두르듯 뚝딱 쉽게 될 일이 아니니 그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오래오래 글 쓰는 일을 즐겨보겠다고 생각해보세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게 글쓰기라지만 시작해서 해가 될 게 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보는 거죠. 글 쓰는 일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고 뒤죽박죽 얽힌 생각을 찬찬히 정리해본다고요. 그러다 보면 가슴속 깊이 숨겨진 아픔이 어느 날 슬쩍 제 모습을 드러내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글을 쓰다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샤워한 듯 말끔해지는 기분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저 역시 글 쓰는 일이 매번 힘들고 때로 고통스럽지만, 꾸준히 애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믿음엔 변함없습니다. 다만 글쓰기를 너무 얕잡아 보진 말기를 바랍니다. 빨리 그럴듯한 결과를 손에 넣고 싶다고 조바심 내지 말기를요. 글은 오묘해서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자신을 내어주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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