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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Nov 09. 2022

중학생 아들과 사이좋게 글쓰기


"엄마,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올해 중학교 1학년 둘째 아이가 갑자기 다가와 묻는다. 내일 학교에서 글쓰기 대회가 있단다. 3단 구성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건 배운 것 같은데 처음에 뭘 써야 하는지 막막하다며 나에게 SOS를 친다. 첫 문장 쓰는 게 어려운 건 알지만 다짜고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물으면 어찌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의 질문을 듣고 나니 숨이 턱 막힌다. 평소 글을 쓰지 않으니 질문도 저리 두루뭉술하다. 매일 일기 쓰라고 했건만, 어미 말을 귓등으로 들었군. 다른 이들의 글쓰기를 돕느라 정작 내 아이는 방치하고 있었던가. 엄마가 기자였고 글쓰기 선생이라 해서 아들도 잘 쓰라는 법은 없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뒷골이 당기며 열이 오른다. "아니, 아들. 이제 와서 그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해. 너 요즘 일기 안 쓰지?"


글쓰기는 중요하다. 읽고 쓸 줄 알면 공부도, 입시도, 취업도, 살아가는 일도 문제없다고 믿는다. 많은 석학과 리더들도 그러지 않나.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르는데 글쓰기만 한 게 없다고. 하버드를 비롯한 세계 유수 대학들도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글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친다. 콘텐츠로 승부하는 시대, 쓰는 능력은 더 귀해졌다. 어른이 돼서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진작 배울 걸 그랬어요. 어릴 때 이렇게 열심히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 애들은 늦기 전에 글쓰기를 가르쳐야겠어요."


하는 일이 이러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내게 아이 글쓰기를 어찌 가르치는지 묻는다. 사실 두 아이에게 글쓰기를 따로 가르친 적은 없다.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어릴 적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한다고 편지를 건넸다. 한글도 다 떼지 않은 아이는 주워들은 대로 글자를 그려왔다. 아이의 편지에 난 사라진 받침을 달아주고 잘못 쓴 글자를 바로잡아줬다. 그것도 빨간 펜으로. 몇 년 후, 책상 정리하다 그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부끄러웠나 모른다. 이후로 아이가 글 쓸 때 참견하지 않는다. 본인이 생각하지 않고 엄마가 말한 걸 그대로 쓸까 봐 아이가 묻지 않는 걸 앞서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가 글을 보여주면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누르고 칭찬해준다. 다만 자주 썼으면 좋겠다고, 더불어 책도 매일 읽어야 한다고 슬쩍슬쩍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글을 쓰겠다는 엄마와의 약속을 잊어버렸다. 제 딴에는 그래도 나름 잘 쓴다고 생각했단다.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많이 써 봐야 하는지 알고 있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내가 강의할 때 귀동냥으로 듣고 지낸 시간이 적지 않다. 엄마가 강의하다 필요한 책인 것 같으면 말없이 책장에서 '그 책'을 찾아 갖다 줄 정도로 아이는 엄마가 글 쓰는 일에 관심도 많다. 늘 글 쓰는 엄마를 관찰할 정도면 아이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믿은 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현실은 내 믿음과 거리가 있었다. 세상에 글쓰기 말고도 해야 할 일,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직접 쓰게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아들, 엄마가 주는 주제로 매주 한 편 글을 쓰는 게 어때? 네가 쓴 글 가지고 엄마가 뭐라고 잔소리하지 않을게. 그냥 써서 엄마한테만 보여주면 돼."


고맙게도 아이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내가 주제를 제시하되 아이가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존중키로 했다. 매주 일요일 저녁, 1000자 이상 써서 구글 닥스에 올리면 미션 완료!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과정 <라라프로젝트>에서 다루는 주제를 아이에게 던졌다. 이미 나 역시 글로 쓴 주제였다. 아이는 1000자를 넘겨 쓰는 걸 어려워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질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몇 주 지나니 아이의 글은 점차 양이 늘었다. 아이의 글을 남편에게 공유했다. 우려와 달리 아이는 제 생각을 곧잘 표현했다. 평소 대화가 많아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글로 적힌 아이의 생각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많고 다양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의 글을 읽고 간단한 메모를 글 아래 남겼다. 틀린 것, 잘못 쓴 것, 더 잘 쓰도록 알려주고 고쳐줄 수 있었지만 그리 하지 않았다. 그건 앞으로 천천히 하면 된다. 우린 그저 아이의 생각을 공감하고 칭찬했다.


아이는 매주 이렇게 글을 쓴다.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썼고 얼마 전 설악산에 다녀온 소감도 적었다. 학원에서 하듯, 책을 펴놓고 아이에게 논술을 가르치면 입시, 취업을 위해 가시적인 효과를 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런 방법을 택할 생각은 없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잘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이다. 글쓰기가 부담스럽지 않아야 잘 쓸 수도 있다. 그리고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글 쓰는 일을 보여주면 좋다. 그리고 같이 쓰면 훨씬 효과적이다. 동일한 주제로 부모도 글을 쓴 후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더 많이 가르치겠다고 지적하고 잔소리하면 아이 마음만 상한다. 관계가 깨지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표현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기 싫은 숙제로 만들지 않는 것! 이게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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