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서론 본론 결론으로 나누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올해 중학교 1학년 둘째 아이가 갑자기 다가와 묻는다. 내일 학교에서 글쓰기 대회가 있단다. 3단 구성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건 배운 것 같은데 처음에 뭘 써야 하는지 막막하다며 나에게 SOS를 친다. 첫 문장 쓰는 게 어려운 건 알지만 다짜고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물으면 어찌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의 질문을 듣고 나니 숨이 턱 막힌다. 평소 글을 쓰지 않으니 질문도 저리 두루뭉술하다. 매일 일기 쓰라고 했건만, 어미 말을 귓등으로 들었군. 다른 이들의 글쓰기를 돕느라 정작 내 아이는 방치하고 있었던가. 엄마가 기자였고 글쓰기 선생이라 해서 아들도 잘 쓰라는 법은 없지만, 가슴이 답답하고 뒷골이 당기며 열이 오른다. "아니, 아들. 이제 와서 그렇게 물어보면 어떻게 해. 너 요즘 일기 안 쓰지?"
글쓰기는 중요하다. 읽고 쓸 줄 알면 공부도, 입시도, 취업도, 살아가는 일도 문제없다고 믿는다. 많은 석학과 리더들도 그러지 않나. 창의력과 사고력을 기르는데 글쓰기만 한 게 없다고. 하버드를 비롯한 세계 유수 대학들도 자신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글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친다. 콘텐츠로 승부하는 시대, 쓰는 능력은 더 귀해졌다. 어른이 돼서 글쓰기를 배우러 오는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진작 배울 걸 그랬어요. 어릴 때 이렇게 열심히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우리 애들은 늦기 전에 글쓰기를 가르쳐야겠어요."
하는 일이 이러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내게 아이 글쓰기를 어찌 가르치는지 묻는다. 사실 두 아이에게 글쓰기를 따로 가르친 적은 없다.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인 큰 아이가 어릴 적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한다고 편지를 건넸다. 한글도 다 떼지 않은 아이는 주워들은 대로 글자를 그려왔다. 아이의 편지에 난 사라진 받침을 달아주고 잘못 쓴 글자를 바로잡아줬다. 그것도 빨간 펜으로. 몇 년 후, 책상 정리하다 그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부끄러웠나 모른다. 이후로 아이가 글 쓸 때 참견하지 않는다. 본인이 생각하지 않고 엄마가 말한 걸 그대로 쓸까 봐 아이가 묻지 않는 걸 앞서 설명하지 않는다. 아이가 글을 보여주면 지적하고 싶은 마음을 꾸욱 누르고 칭찬해준다. 다만 자주 썼으면 좋겠다고, 더불어 책도 매일 읽어야 한다고 슬쩍슬쩍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글을 쓰겠다는 엄마와의 약속을 잊어버렸다. 제 딴에는 그래도 나름 잘 쓴다고 생각했단다.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많이 써 봐야 하는지 알고 있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내가 강의할 때 귀동냥으로 듣고 지낸 시간이 적지 않다. 엄마가 강의하다 필요한 책인 것 같으면 말없이 책장에서 '그 책'을 찾아 갖다 줄 정도로 아이는 엄마가 글 쓰는 일에 관심도 많다. 늘 글 쓰는 엄마를 관찰할 정도면 아이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고 믿은 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현실은 내 믿음과 거리가 있었다. 세상에 글쓰기 말고도 해야 할 일,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대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직접 쓰게 만드는 일이 필요했다. "아들, 엄마가 주는 주제로 매주 한 편 글을 쓰는 게 어때? 네가 쓴 글 가지고 엄마가 뭐라고 잔소리하지 않을게. 그냥 써서 엄마한테만 보여주면 돼."
고맙게도 아이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내가 주제를 제시하되 아이가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존중키로 했다. 매주 일요일 저녁, 1000자 이상 써서 구글 닥스에 올리면 미션 완료!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과정 <라라프로젝트>에서 다루는 주제를 아이에게 던졌다. 이미 나 역시 글로 쓴 주제였다. 아이는 1000자를 넘겨 쓰는 걸 어려워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질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몇 주 지나니 아이의 글은 점차 양이 늘었다. 아이의 글을 남편에게 공유했다. 우려와 달리 아이는 제 생각을 곧잘 표현했다. 평소 대화가 많아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글로 적힌 아이의 생각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많고 다양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의 글을 읽고 간단한 메모를 글 아래 남겼다. 틀린 것, 잘못 쓴 것, 더 잘 쓰도록 알려주고 고쳐줄 수 있었지만 그리 하지 않았다. 그건 앞으로 천천히 하면 된다. 우린 그저 아이의 생각을 공감하고 칭찬했다.
아이는 매주 이렇게 글을 쓴다.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썼고 얼마 전 설악산에 다녀온 소감도 적었다. 학원에서 하듯, 책을 펴놓고 아이에게 논술을 가르치면 입시, 취업을 위해 가시적인 효과를 낼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런 방법을 택할 생각은 없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잘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일이다. 글쓰기가 부담스럽지 않아야 잘 쓸 수도 있다. 그리고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먼저 글 쓰는 일을 보여주면 좋다. 그리고 같이 쓰면 훨씬 효과적이다. 동일한 주제로 부모도 글을 쓴 후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더 많이 가르치겠다고 지적하고 잔소리하면 아이 마음만 상한다. 관계가 깨지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표현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하기 싫은 숙제로 만들지 않는 것! 이게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