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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Mar 10. 2023

챗GPT, 네가 글을 쓴다고? 쳇!

글쓰기는 과정의 미학인 것을

챗GPT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요즘 핫이슈. 네이버에 검색하면 '챗GPT'를 키워드 삼아 적은 글이 줄줄이 뜬다. 나 역시 이를 제목에 박아서 글을 몇 개 썼다. 챗GPT의 신박함, 챗GPT를 가지고 노는 재미, 마구 복사해서 붙이는 위험성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챗GPT가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의 최상위 지적 영역인 '글쓰기'를 전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글쓰기는 '인성불가침' 영역이니까.

    

챗GPT가 아무 말 대잔치를 쏟아놓았다는 기사를 매우 신나게, 숨도 안 쉬고 읽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세종대왕 맥북프로 던짐 사건', '조선 중기 티타늄 전차', '대동여지도 연금술사들의 폭동', '거북선의 라이트닝 볼트 발사 메커니즘'이라는 전대미문의 단어 조합에 챗GPT는 너무나 진지하고도 그럴듯하게, 하지만 거짓인 대답을 내놨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심각하게 받아들인 녀석. 그래, 넌 아직 멀었어.   


  

얼마 전 글쓰기 수업 안내글을 쓰면서 챗GPT에게 물었다. "글쓰기 기초 수업을 열려고 해. 모집 안내글을 써줘."

오랜시간 고민하면서 쓰는데 챗GPT는 어떤 글을 뚝딱 내놓을까.

작가 지망생들은 모두 주목하세요!
글쓰기의 기본에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여러분은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고 여러분의 생각을 더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싶나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당신을 위한 완벽한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초 쓰기 수업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을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 수업은 글을 처음 쓰거나 기초를 복습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되었다. 경험이 풍부한 우리 강사들이 문법, 문장 구조, 단락 전개의 기본을 안내하고, 자신감 있게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제공할 것이다.
여러분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고 여러분의 글쓰기를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자리 확보를 위해 오늘 꼭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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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여러분이 글쓰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간단명료하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답변. 그대로 썼으면 클릭 한 번 됐으려나. 챗GPT가 영어 기반이라 번역체의 어색함이 있고 내 수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요구사항에 넣지 않은 결과였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챗GPT에게 받아내려면 질문을 정교하게 다듬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글쓰기 기초 수업에 대해 사람들은 무엇이 궁금할까?" 질문을 바꿨다. 그러자 공급자 입장에서 이전까지 내가 고려하지 않았던 수요자의 마음을 챗GPT는 말해줬다.

이 수업은 사전 집필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적합할까요?
누가 그 수업을 가르칠 것이며, 그들의 자격은 무엇인가요?
수강생이 개인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생들이 글쓰기 기술을 계속 연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챗GPT, 요 녀석 자판기일세?! 우린 자판기가 주는 편리함을 안다. 돈을 넣는다. 음료수를 고른다. 철커덕.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낸다. 이보다 간단하고 빠른 결과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자판기 안에 들어있는 음료수는 제한적이다. 초콜릿향이 나는 묵직한 드립 커피가 마시고 싶을 자판기는 선택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부러 차를 타고 주차의 번거로움을 감내하면서까지 원두가 신선하고 바리스타의 드립 기술이 전문적이며 커피 향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 있는 카페를 찾는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내 머릿속 생각의 정체를 풀어내는 일,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밝혀내는 것부터 단순치 않고, 설사 알아낸다 하더라도 고스란히 글자로 치환하는 건 복잡하다. 

한 번에 뚝딱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이 나오는 건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는 걸 절감하지만 그 어렵다는 게 또 내게 다가오면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챗GPT가 글을 뚝딱 써준다고 했을 때 처음에 기분 나빴다. 넌 로또 당첨이 그리 쉽더냐. 다만 챗GPT를 적대시하진 않기로 했다. 또 다른 시대로 가는 변화의 시작이라는 걸 안다. 앞으로 무한 학습 능력으로 무적의 골리앗이 될 수 있다는 걸 직감한다. 그럼에도 결코 인간이 직접 글을 쓰며 누리는 기쁨을 그 녀석이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자신한다.


생각하고 쓰고 고치고... 반복하는 과정이 글쓰기 자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한 번에 ‘따라!’ 하고 멋진 글을 내보이면 좋겠지만 우리가 노력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글쓰기의 전부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성장한다. 폴 김 교수도 그의 저서 <다시, 배우다>라는 책에서 말했다. 삶의 모든 게 배움의 과정이라고.    

 

글 쓰는 사람이 위대한 건 결과물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쓰고 고치는 과정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글 잘 쓰는 작가들이 가끔 TV 프로그램에 나오거나 인터뷰를 할 때가 있다. 비록 그가 쓴 작품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눌변이라도 작가의 생각에 감탄할 때가 많다. 그게 하루아침에 툭 튀어나왔겠나. 머리 쥐어뜯으면서 고민했을 거고, 늘 머릿속에 두고 있었던 질문인지라 걷다가 생각났을 거고, 세수하다 샤워하다 물소리 들으면서 답이 건져졌을 거다. 그걸 다시 글로 쓰고 또 생각을 부르고 또 글로 쓰고.     


우리는 그 과정 안에서 더 나아진다. 글쓰기가 지난한 과정인지라 그 일을 잠자코 지속하는 사람이 적겠지만 분명 과정의 미학이 존재한다. 미학이 항상 쉽고 빠른 결과를 낼 리 없다. 아무리 대세라고 해도 글쓰기를 챗GPT에게 다 넘겨주고 싶지 않다. 아니, 인간의 글쓰기를 AI가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존엄을 마지막까지 지키고픈 나는 분명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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