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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pr 07. 2023

당신이 내향인이라면

우리 집 둘째는 어릴 적 발표하는 걸 싫어했다. 손 들고 자발적으로 앞에 나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수업 시간에 돌아가면서 무언가 말해야 할 때면 자기 차례가 오기까지 얼굴이 굳었다. 입술이 실룩실룩, 손가락은 꼼지락꼼지락. 집에선 방바닥에 배를 깔고 밖에서 배운 노래를 흥얼거렸고, 온 집을 뛰어다니며 춤도 잘 춰서 이런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전해 들을 때면 남의 아이 말하는 것 같았다. 둘째의 이중생활은 머지않아 확인 가능했다. 유치원이나 교회에서 다른 아이들이 되든 안 되든 노래며 율동을 열심히 따라 할 때 우리 집 아이는 가만히 서서 쳐다만 봤다. 아이는 처음 듣고 보는 것을 자기화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깨닫고 나니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아이가 이상하지 않았다.

 

얼마 전 큰아이 반 친구 엄마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걸로 유명한 여자아이의 엄마도 있었다. 그 아인 매우 조용하고 말이 없다고 했다. 원래 그런 건지, 계획적인 건지 내심 궁금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말을 아끼는 여자애들이 몇몇 있었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 그 아이는 천성적으로 그러하다는 것. 수업시간에 호명되면 귀까지 빨개지고, 자기소개 시간 자신의 순서에 이르기까지 심장이 두근거려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생일 축하를 해주는데 얼굴을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마스크를 쓴 채 케이크 촛불을 손으로 휘휘 저었다고. 그런데도 꺼지지 않자 결국 케이크를 판 채 들고 뒤돌아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훅 불어 끈 후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고.

 

우린 이런 아이들을 '내향적', 혹은 '내성적'이라고 부른다. 혼용해서 잘 쓰이지만 두 단어엔 차이가 있다.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에 따르면, 내향과 외향은 관심사가 자신의 내면과 외부 중 어디를 향하는지에 대한 개념이다. ‘내성적’은 타고난 사회성이 낮은 걸 의미한다. 분명 다른 의미지만 겉으로 보이는 결과는 비슷하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관심이 없으니까 혼자 있는 것(내향)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어려우니까(내성) 혼자 있는 거다.


 

내향적인 사람은 귀 기울여 듣고 관찰하는데 능하다. 우리 집 둘째는 내향적이다. 친구들과 무척 잘 어울리는데 관심사가 밖을 향하진 않는다. 낯선 환경에 가면 불안감에 눈을 깜박인다. 자신이 충분하게 준비가 됐다고 확신이 들 때까지 아이는 눈을 떼지 않고 관찰한다. 좋아하는 야구 선수들의 투구 자세, 타격 자세도 기가 막히게 따라 한다. 각 사람마다 특징을 정확히 잡아서 묘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둘째는 그래서인지 글도 어렵지 않게 쓴다. 글쓰기가 나와 타인, 세상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관찰에서 출발한다고 볼 때 내향적인 사람은 글쓰기에 필요한 강력한 무기를 이미 장착한 셈이다.

 

글쓰기는 내향인이 선호하는 자기표현 방식이다. 홀로, 깊이 집중하여 사려 깊은 결과물을 내는 능력을 그들은 갖추고 있다. 글쓰기는 다른 이들에게 닿는 속도가 더디고 자기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서 내보여야 하기에 타인과 세상을 향해 자기 목소리를 빠르게 내고 싶은 외향인들에겐 답답한 의사소통 수단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성찰과 자기표현, 자기 관리를 위한 도구로 글쓰기는 탁월하다.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 필요한 내향인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폭풍 수다 속에서 어느 순간 기가 빨리는 경험을 했노라면, 당신은 글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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