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르 Jun 30. 2023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서 날 지켜줘

오후 4시 너머 뜬금없는 인물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그녀와 내가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건 2018년. 5년 전이다. 결코 예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던 메시지. 꾹 눌러 열어볼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슬쩍 밀어, 미리 보기를 펼쳤다. 번개 같은 속도로 쓱 훑곤 휴대전화를 덮었다. 난데없는 사과의 글.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도 없는 집 안, 식탁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하다 말고 꺼억꺼억 울음이 터졌다.


살다 보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한두 번 보고 지나치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오래 시간을 공유하는 이들도 있다. 그녀와는  수년을 함께 했다. 하나, 둘, 셋... 알고 지낸 햇수를 꼽으니 제법 여러 손가락이 꼽아지고 다시 펼쳐졌다. 나는 그녀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 속은 열길 물속보다 헤아리기 어렵다고 했던가. 해가 거듭되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은 하나. 그녀는 알 수 없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마다 프리즘 같은 면이 있어서 보이는 모습은 여럿이다. 학교와 직장에서 만나는 이에게 가족처럼, 배꼽친구처럼 대하듯 하지 않는다. 인간은 때때로 카멜레온보다 더 다채롭게 상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곤 한다. 상록수처럼 한결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그러하지 못하기에, 그녀를 이해하려 했다. 그럼에도 '000' 이름 석 자를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았다. 뭐라 명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 배신감이라 말하면 비슷할까. 이해하려 애쓸수록 마음이 어려워졌다. 못마땅했고 미웠다. 기억 속에서 잊기로 했다.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자 비로소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내 눈앞에 다시 등장했다.


왜 갑자기, 연락한 속내는 무엇일까. 파문 일어 소란스러워진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트를 펼쳤다. 솔직한 마음을 여과 없이 갈겼다. 이제 와서... 난 그동안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왜 힘들었던 거지.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노트는 좁았다. 컴퓨터 화면을 열었다. 관계가 어그러졌던 이유를 써 내려갔다. 어떤 면이 힘들었는지 쉼 없이 자판을 두드렸다. 


인생에서 관계 가운데 몇 번의 힘든 시기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내려갔다. 초등학교 6학년 절친, 회사 선배, 학부모로 만난 인연까지. 갈 바 모르고 정착하지 못한 마음이 복잡한 숲길을 내달렸다. 무성한 나뭇가지를 헤치고 걷다 뛰다 좁은 오솔길 앞에 멈춰서 숨을 고르듯, 글을 쓰다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 한숨을 쉬다, 나도 모르게 멈춰 섰다. 순간, 오랜 시간 날 짓누르던 돌덩이가 작아졌다. 어둑했던 그림자도 걷혀갔다. 그녀의 진심이 뭔지는 알 수 없으나,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제야 카톡을 열어 찬찬히 읽고, 그녀에게 답을 보냈다. 


하얀 화면 위에 새까맣게 채워진 글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괜찮다고. 힘들었던 시간 동안 난 이미 여러 번 글을 썼다. 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에세이도 썼고, 알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실망감도 적었다. 감정에 압사될 것 같을 때마다 여러 형태로 변주하며 글을 썼다. 쓰고 나면 폭풍 같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았다. 덕분에 주변 이들에게 그녀의 험담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과받을 줄이야. 감정을 실어 뒷담화하지 않고 입술을 지킨 게 천만다행이었다. 


조만간 그녀와 마주칠지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당장일 지도, 몇 개월 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내일 만난다고 해도 상관없다. 괜찮다고, 밥 한 번 먹자는 말까지는 자신 없지만 적어도 눈길을 피하지 않고 여유 있게 그녀의 어깨를 두드릴 수 있을 테니까. 난 글을 썼고 시도 때도 없이 거칠 게 일어나던 모래바람을 잠재웠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서 조용히, 우아하게 날 지켜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 어려운, 글쓰기 유지어터 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