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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Aug 06. 2023

당신의 글쓰기 체질은 어떠한가요?

매일 무언가를 쓰긴 쓰는데 가끔 왜 이 글을 쓰나 싶을 때가 있어요. 단지 쓰는 행위를 '루틴'으로 가져가기 위해서인지, 진정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인지 헷갈립니다. 지금 쓰는 글이 과연 시간이 지나서도 의미가 있을지 생각이 닿으면 잠시 멈춰 서게 돼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믿음은 '써야 한다'는 거예요. 일단 쓰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레기 같든, 똥 같든. 우리에겐 이후 '처리 과정'이 있으니까요. 떼내고 덧붙이고 다듬어 고치면 글은 제법 좋아집니다. 물론 쉽지 않죠. '글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좋은 글은 쓰고 여러 번 고치는 데서 나온다' 글쓰기 책에 나오는 '진리'와 같은 말이지만 이를 실행하는 데는 실로 많은 노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저 역시 말끔하게 잘 써진 글을 자주 떠올립니다. 기자 생활을 하던 습성 때문일 거예요. 매일 기사 하나하나를 완결시켜야 하는 일. 오늘 일단 대략 써 놓고 내일, 모레 시간을 두고 고치고 또 고치는 일은 가당치 않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글이 되고 맙니다. 기사는 시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글이고, 사건이나 이슈가 변해가는 과정을 꼬박꼬박 제때 반영해야 하니까요. 


비유하자면, 단거리 스프린터와 같아요. 하루 정해진 거리를 전력 질주하여 피니시 라인에 닿으면 일단 업무 끝.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를 일이거든요. 오늘 고민해야 하등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기자를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매일 기사를 마감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지만 마감 이후는 '자유'입니다. 기사를 넘기고 순간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은 중독성이 크죠. 아주 짜릿합니다. 그래서 만날 똥줄 타는 고통을 알면서도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듯해요.

   

기사 쓰기가 호흡이 짧은 작업이었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며칠 전 새벽에 일어나 말씀 묵상을 하다가 생각했습니다. 제게 책 한 권을 하루에 다 쓰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요. 말이 안 되죠. 책이 '책처럼' 보이게 만드는 두께가 있어요. 보통 30~40개 글이 묶여야 '책등'이라는 게 도톰해집니다. 그런데 이걸 하루에 다 쓰다니요. 보통 과중한 일이 아니죠. 지레 겁부터 먹고 엄두가 안 났던 건 당연하고요.


'글을 많이 써야 해, 더 써야 해.' 스스로 짓누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냥 조금씩, 한 편을 쓰면 될 일인 것을. 하루 1편을 쓰면 한 달에 글 20개가 나옵니다(주말엔 쉬어야죠). 그렇게 쉬엄쉬엄 두 달을 쓰면 글 40개가 나와요. 하루 1편이 버겁다면, 여유롭게 매주 1편이라고 해 볼게요. 1년에 52주. 1년이면 50개의 글을 쓸 수 있다는 결론. 그저 한 편씩 차분하게 내 생각을 정리하면 1년마다 책 한 권이 나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끝을 생각하면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언급되는 성공 습관 중 하나입니다. 글을 쓸 땐 사실 끝을 헤아리는 게 쉽지 않아요. 쓰다 보면 내 생각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습니다. 자유롭게 길을 내며 숲을 탐방하는 게 글쓰기의 묘미기도 하구요. 그동안 제 글쓰기의 끝은 '매끈하게 잘 빠진 글'이었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해요. 누가 읽어도 쉽게, 물 흐르듯, 입에 착 붙는 글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깜박 잊고 있던 한 가지를 찾아 넣어주기로 했습니다. 글쓰기는 '과정'이라는 사실이요. 완성된 글만 생각하면 글을 쓰는 일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끝이 어떤 모양이 나올지 그저 궁금해서 설레고, 멋지리라 기대하는 것까지만 일단 하기로요. 우리가 감탄해마지 않은 기성 작가의 완성도 높은 글도 처음부터 붕어빵처럼 뚝딱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고수의 초고는 초보의 것과 수준이 다르겠지요. 그래도 분명한 건 그들의 초고도 수많은 퇴고를 거친 끝에 비로소 '완성작'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입니다.


체질을 개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일상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라면 때로 과거 습관을 점검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글쓰기에도 체질 개선이 필요하지 싶어요. 멋진 글, 좋은 글을 위해 애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하나하나 글자를 채워 넣고 차곡차곡 글이 쌓여지는 과정을 누리려 합니다. 결과에 대한 조바심이 조금은 잠잠해지고 오히려 글에 여유가 더해질 거라고 믿어요.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는 숨겨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을 다시 챙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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