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 쓰지 말라고? 이렇게 좋은 걸?
'부사'에 대한 명언 중 가장 유명한 건 작가 스티븐 킹의 발언일 게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다."
언어 체계에 보란 듯 존재하는 '부사'를 두고 지옥까지 거론할 건 뭐람. 그 자신도 부사에서 마냥 자유롭진 못한데 "부사를 써주지 않으면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부사는 문장에서 꾸며주는 말이다. '노래한다' 대신 '아름답게 노래한다', '예쁘다'를 '눈부시게 예쁘다', '달린다'에 덧붙여 '빠르게 달린다'라고 쓰는 것. 밋밋할 수 있는 문장에 꾸밈말을 더해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만든다. 부사가 제대로 쓰이면 문장이 풍성하고 재미있다. 우리 집 아이는 내가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이리 말한다. "또 내 말을 띄엄띄엄 듣네." 또, 띄엄띄엄이라는 말을 빼면 '내 말을 듣네'만 남는데 사뭇 느낌이 다르다.
왜 이토록 유용한 부사를 쓰지 말라고 하는지 의아하다. '말한다' 보다 '치졸하게 말한다'가 글 쓴 이가 말하는 바를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아닌가. 모든 문장을 쓸 때 부사, 더 나아가 형용사를 쓰지 않는다면 당최 글이 건조해져 쓸 맛도, 읽을 맛도 없지 않나. 스티븐 킹은 부사를 사용하지 않아도 '글 맥락 속에서 독자는 작가가 말하는 바를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러려면 누군가 '치졸하게' 말한다는 느낌을 글에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전후 맥락을 모두 고려해 '치졸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러한 느낌을 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문장을 밀고 나가는 김훈 작가는 최근 <월간 시인>에 실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2022년 8월에 장편소설 《하얼빈》을 출간했다. 하얼빈에서 “이토가 곧 죽었다”라고 썼다.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에 맞은 뒤 이등박문이 죽는 장면이다. 나는 처음에 ‘곧’이란 부사 없이 “이토가 죽었다”라고 썼다가 고쳤다. 개정판을 낼 때 ‘곧’을 뺄까를 고민하고 있다. 부사 하나, 형용사 하나에 대해 끝까지 고민하는 것이 자신만의 문체를 만든다." 그는 불필요한 형용사도 쓰지 않는다. ‘착하다’라고 명명하는 순간, 해당 인물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착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는 것. 그의 착한 성품을 드러내고 싶다면 특정 상황을 펼쳐두고 독자를 초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실 부사에는 죄가 없다. 쓰는 이가 고민 없이 말버릇처럼 붙이는 것, 남발하는 것이 문제다. 내 생각,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할 '적확한' 단어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표현이 있을 법한데 더 찾아보려 하지 않는 것. 나아가 독자에게 생각을 강압적으로 쑤셔 넣는 느낌이 드는 부사라면 지워야 한다. 작가들이 부사에 발작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는 건 익숙함에 길들여져 상투적인 표현을 쉬이 쓰는 일을 멀리하기 위해서일 게다.
그럼에도 글을 쓰다 보면 참을 수 없이 부사를 쓰고 싶을 때를 마주한다. 사춘기인 둘째 아이의 요즘 상태를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가끔 퉁명스럽고 매우 고집스러운.' 그냥 퉁명스럽고 고집스럽다고 쓴다면 아이의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운 면이 사라져 버린다. 내가 아는 한 아이는 사춘기라고 항상 틱틱거리는 것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여전히 사랑스러운 면이 있지만 ‘가끔’(일주일에 한두 번) 퉁명스럽고 ‘매우’(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는 절대 의견을 꺾지 않아) 고집스럽다. "너의 의견만이 옳지 않아. 이런 상황도 있을 수 있어"라고 조언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건 고집스러운 게 아니라 내 입장에선 '매우' 고집스러운 것이다. 물론 ‘매우’라는 단어 대신 앞서 내가 언급한 대로 얼마나 고집스러운지를 상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이게 더 낫다. 하지만 길게 서술할 수 없을 때, 이를테면 인스타그램 피드에 간단히 올리고 싶을 땐 '가끔', '매우', '정말'과 같은 부사가 유용하다. 무척.
다만, 과도하게, 빈번하게, 반복적으로 쓰는 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짜장면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정말 쫀득하고 입에 착 감겨서 되게 맛있었다. 아침을 먹지 않아서 엄청 배고팠는데 대박이다.' 진짜 맛있는 것 안다. 짜장면은 '진짜'라는 말 없어도 맛있다. 더불어 ‘엄청 배고팠는데’ 말 대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만큼 배고팠는데',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배고팠는데'와 같이 자신이 느끼는 상태를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글뿐만 아니라 대화에서도 말마다 되게, 진짜, 엄청, 정말을 남발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상황이 그리 극적이고 거대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 흥분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다소 가볍다는 인상마저 받는다.
부사도 '진짜' 필요할 때 써야 빛난다. 아무 생각 없이 단어마다, 문장마다, 말 끝마다 진짜, 엄청, 굉장히 를 붙인다는 걸 발견할 때마다 나 역시 입 속으로 말을 꿀꺽 삼킨다. 자판을 치다가 잠시 손가락을 들어 1초간 머뭇거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좋다'라고 하지 않고 '되게' 좋다고 쓰고 싶은 이유는 뭘까. 습관일까. '되게'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 글이 달라질까. 글에서 표현하고 싶은 내 감정이 왜곡될까. '되게' 대신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단어는 무엇이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면서 다른 표현을 찾는다.
이쯤 되면 문장 하나 쓰는 게 골치 아파진다. 글쓰기는 이런 것이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습관처럼 던지는 말로 채울 수도 있지만, 할 수 있다면 나만의 것으로 새롭게 하려는 노력. 그렇지 않다면 내 글은 인터넷에 떠도는 수억 개의 글과 다를 게 없고, 우리의 언어 세상은 점차 쪼그라들지도 모른다.